[매일춘추] 열정과 여유

입력 2010-11-10 08:09:16

일 년에 두 번, 난 또 다른 나의 비즈니스를 위해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물론 나의 대형 트렁크 안은 자신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차분히 정리되어진 나의 분신들로 가득 채워진다. 만들면서 어느 나라로 갈지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는지라 색깔이 다른 아이들이 트렁크 공간 안에서 뒤엉키지 않도록 조심스레 다룬다. 전시장 안 밝은 조명 밑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기 전까지….

그곳에 도착하면 같은 일을 하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그들의 문화와 여유도 함께 배운다. 지난 시즌에 바로 옆 부스에서 함께했던 이웃이 이번 시즌 조금 떨어져 있어도 단번에 서로를 알아본다. 다시 만나 반갑고 진심으로 서로가 잘 되기를 빌어준다. 전체적인 옷 색상이 밝아짐에도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려 서로에게 힘을 실어준다. 그들은 무료로 나눠주는 샴페인 한잔으로 즐거움을 나눌 줄 알고 진정 즐기면서 일을 한다.

바이어들도 마찬가지다. 한참 오퍼시트를 작성하다가 갑자기 서로가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같음을 알고 하이파이브를 외친다. 옆에서 보던 통역이 우리를 재미있게 쳐다본다. 대화는 잘 안되지만 사소한 일상이 우리를 더욱 친근하게 만들어 준다.

만들어진 모든 옷들이 그들에게 전부 맘에 들리는 없다. 하지만 맘에 드는 하나의 옷으로도 서로를 좋다고 끌어안을 수 있는 사이라면 진정 서로를 신뢰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신뢰를 바탕에 깔고 최선을 다해 제품을 개발한다면 분명 서로가 윈윈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주에는 우리 대구에서도 최대의 패션 축제인 패션페어가 열렸다. 물론 우리 바이어도 초청했다. 나는 그들과 옷을 통해 만났고 옷을 통해 인간적인 신뢰를 쌓고 있는 중이다. 그들 또한 옷에 대한 열정으로 흔쾌히 참석해 주었고 나는 홈이라는 이점을 활용해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 벌의 옷이 태어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산고를 겪는지 알고 우리 한국 제품이 이 정도로 우수하다고 분명 바이어들도 인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유롭게 즐기는 문화가 부족한 것 같다. 비록 쓰는 언어는 다를지라도 사람의 마음은 얼굴 표정 하나로도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 패션페어에도 여유를 가지고 서로 격려하며 함께 즐기는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패션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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