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모르는 전화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별생각 없이 받아 들었는데, 낭창한 목소리로 "희경아, 나야"라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게 아닌가! 그렇게 걸려온 전화의 주인공은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갔다는 소식만 들었지 그 사이에 연락이 없었던 여고 동창생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30년만에 서울역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고,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염려 속에 식당 입구에 들어섰는데 그 염려는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한눈에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30년의 공백을 대화로 채우느라 음식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친구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그런데 친구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이번에 미국에서 나오게 된 이유도 엄마때문이라며 깊은 숨을 들이키며 대답하였다. 노인 우울증이 심해지셔서 아무 의욕이 없으시고 하다못해 식사도 떠서 입에 넣어 드려야 할 형편이라고 답했다.
자기 생각으로는 엄마가 먹지 않는 방법으로 삶을 포기하시려고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고 하였다. 남 보기에는 복이 많은 노인일 텐데 아버지가 먼저 하늘나라로 가시고 모든 걸 포기하신 것 같다며, 그리고 자식 네 명이 아버지 한 분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안타까워했다. 그러다가 "우리라도 남편에게나 자식에게 의존하지 말고 혼자 살 수 있는 힘을 지금부터 기르자" 라고 다짐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하였고, 언제 한 번 시간 내어서 혼자 미국에 놀러 오라는 친구의 초대를 받았다.
노인들은 배우자와 사별했거나 자녀들과의 별거에서 오는 고립감으로 인해 깊은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혼자라는 느낌에 빠지기 전에 미리미리 혼자라는 기분에 익숙해지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해인 시인은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이라고 했다. 여럿 속의 삶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해 나를 돌보는 시간이라는 개념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떼어놓아야 하겠다.
혼자 있는 시간을 갖게 될 때 조용하게 진정한 자아를 들여다 볼 수 있고, 눈에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모든 것에 관심을 가져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긴 수명이 남은 자산이 되어 스스로를 위로하며 건강한 노년의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
최근에 일본에서 99세 할머니가 베스트셀러 시인으로 등장하여 화제이다. 올해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발간한 시바타 도요가 그 주인공인데 92세에 글쓰기를 시작해 험난한 인생여정을 긍정의 힘으로 풀어내 많은 일본인들을 위로하고 있다. 1992년 남편과 사별한 후 20년 가까이 홀로 생활하면서 혼자 사는 삶을 이렇게 노래한다.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안으로 들어오게 해 주었지/ 그랬더니 햇살까지 들어와/ 셋이서 수다를 떠내/ "할머니 혼자서 외롭지 않아?"/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인간은 어짜피 다 혼자야."/ 나는 대답했네.'
영남대병원 치과 교수 이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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