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암서원 복원·삼인사 향사 행사 열려

입력 2010-11-05 07:55:56

월암서원 복원추진위원회(위원장 김기탁)는 지난달 29일 구미 도개면 월암정에서 서원 복원 및 삼인사(三仁祠) 향사(享祠) 행사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김태환 국회의원, 김관용 경북도지사, 남유진 구미시장, 문중 대표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월암서원은 1630년(인조 8년)에 창건됐으며, 명종 때의 문신 김주(金澍), 사육신의 한 사람인 하위지(河緯地), 생육신의 한 사람인 이맹전(李孟專) 등의 위패를 모셨다. 1868년(고종 5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 지금은 월암정만 남아 있다.

월암서원은 지난 2001년 복원을 위해 고유제를 지내고 상의사, 흥사청, 동제, 서제 등의 공사를 진행해왔다.

농암(籠岩) 김주 선생은 고려 공양왕 때 하절사(賀節使)로 명나라에 가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압록강에 이르러 조선 건국 소식을 듣고 통곡하면서 부인 유 씨에서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으니, 내가 강을 건너면 몸둘 곳이 없노라"며 서신을 보낸 뒤 명나라로 망명했다.

단계(丹溪) 하위지 선생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성삼문 등과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졌다. 1435년(세종 17년) 생원을 거쳐, 1438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장원을 한 뒤 집현전 교리(校理), 부제학, 예조참판에 오르는 등 뛰어난 문장가였다.

경은(耕隱) 이맹전 선생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수양대군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키자 관직에서 물러나 선산(善山)에 내려가 김숙자(金淑滋) 등과 학문을 교유하며 일생을 마쳤다. 귀가 먹고 청맹(靑盲)이 되었다고 하며 은둔생활을 고집했으며, 대궐을 향해 앉지 않았다고 한다.

구미·전병용기자 yong126@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