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조카들 키우는게 무슨 자랑거리가 되나요"
서상수(가명·57·경북 경주시 안강읍) 씨 부부는 말이 없었다. "내 조카들은 내가 키우는 게 당연하지 그게 무슨 자랑거리냐"며 묻는 말에 태연하게 답할 뿐이었다. 서 씨와 부인 심명자(가명·49) 씨는 각각 지체장애 5급과 4급으로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이다. 편치 않은 몸으로 서로 의지하며 살기도 벅차지만 30㎡ 남짓한 좁은 집에서 소라(가명·16·여) 삼남매와 함께 사는 이들의 마음은 그 누구보다 넓었다.
◆두 식구에서 다섯 식구로
경주 시내에서 차로 1시간 이상 들어가야 하는 경주시 안강읍 대동리. 10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시골 마을에서 서 씨 부부는 마음씨 좋기로 소문난 사람들이었다. 몸이 멀쩡한 사람도 제 자식을 외면하는 일이 잦을 만큼 각박한 세상에서 이들 부부는 어린 조카 셋을 보듬어 키우고 있었다.
부엌과 안방, 욕실을 합쳐도 30㎡가 안 되는 작은 집에 서 씨 부부와 소라, 소희(가명·13·여), 경제(가명·12)가 살을 비비며 산다.
삼남매가 경북 포항에서 경주로 이사를 온 것은 2006년 겨울. 2005년 부모가 갈라선 뒤 아이들은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이듬해 봄,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친할머니마저 그해 겨울 아버지를 따라 눈을 감았다.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진 삼남매는 아동보호센터로 향해야 했지만 아이들 고모인 심 씨가 '엄마 노릇'을 하기로 했다.
오른쪽 발이 바깥쪽으로 굽어 걸을 때 깡충깡충 뛰어야 하지만 심 씨는 이 가정을 책임지는 듬직한 엄마다. 그는 읍내 이불공장에서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재봉틀을 돌린다. 잔업이 있을 땐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희뿌연 불빛 아래 열심히 재봉틀을 돌리고 받는 돈은 월 100만원 정도다. 처음에는 두 식구 생계를 위해 일했지만 이제 책임져야 할 식구가 셋이나 더 생겼기에 오랫동안 공장에 남는 날이 많아졌다. "애들 셋을 키우려면 부지런히 일해야 해요. 하지만 일할 수 있는 게 어디예요." 힘든 생활 속에서도 심 씨는 마냥 웃는다.
◆서 씨는 '작은 거인'
어릴 때 앓은 구루병으로 등이 굽은 서 씨의 키는 채 130㎝가 안 된다. 체구는 작아도 삼남매의 '발'이 되는 그는 작은 거인이다. 서 씨 집에는 차가 한 대 있다. 10년 전 중고로 장만한 빨간색 티코다. 오른발이 불편한 아내를 위해 브레이크와 액셀 페달을 모두 왼쪽으로 옮기는 대수술을 한 맞춤형 자동차다.
하루에 버스가 세 차례만 들어오는 대동리에서 티코는 이 가정의 유일한 이동수단이다. 구멍가게 하나 없는 마을에 학교가 있을 리 만무하다. 소라는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포항까지 가야 하고 소희와 경제는 각각 안강읍에 있는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닌다. 서 씨는 새벽같이 일어나 아이들을 읍내까지 실어 나른다.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오는 것도 그의 몫. 매일 오후 10시, 소라가 스쿨버스를 타고 읍내에 도착하면 서 씨는 차에 몸을 싣는다. "남보다 걸음이 느리니까 항상 서둘러야죠." 삼남매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은 언제나 분주하다.
경주는 서 씨가 세 번째로 터를 잡은 곳이다. 경남 마산이 고향인 그는 14살 때부터 부산에서 살았다. 작은 점포를 얻어 전파상을 운영할 때만 해도 견딜 만했다.
그러나 1988년 서울올림픽 후 물가가 급등하면서 집주인은 점포세를 올려달라고 했다. 게다가 갈수록 출장을 가야 하는 일이 늘어나 움직이는 것이 버거웠던 서 씨는 설자리를 잃었다. 1980년대 후반 만난 심 씨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렇게 포항을 잠시 떠돌다 1991년 아내와 함께 경주 안강읍으로 들어왔다.
◆쑥쑥 자라는 아이들, 하지만 좁은 집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걱정거리도 늘었다. 매일 아침 서 씨 집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등교시간에 쫓기는 삼남매와 오전 8시까지 출근을 해야 하는 심 씨는 욕실 하나를 나눠 써야 하기 때문에 식구들은 오전 5시 30분이 되면 눈을 뜬다. 안방을 세 아이에게 내주고 부엌에서 지내는 서 씨 부부는 끝까지 삼남매 걱정만 했다.
"경주에 올 때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소라가 이제 고1이에요. 경제가 다 큰 누나들과 방을 나눠 쓰니 누나들이 옷 갈아입을 때마다 밖으로 쫓겨나요."
학생이 셋이건만, 방에는 책상을 넣을 공간조차 없다. 아이들은 방바닥에 누워서 공부하거나 밥상을 펴놓고 책을 본다. 소라 수학여행 보내줄 형편도 안 되는데 집을 넓히겠다는 생각은 사치다. 11월 1일부터 3박 4일간 소라네 반 친구들은 모두 중국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친구들이 떠난 교실에 쓸쓸히 앉아있을 소라를 생각하니 심 씨의 가슴은 더 시려온다. "국내 여행을 갔으면 그래도 보내줄 수 있었을 텐데…." 빈부격차를 확인하는 해외 수학여행이 못내 원망스러울 뿐이다. 남들과 섞이지 않고 조용히 살아온 서 씨 부부에게는 작은 소원이 하나 있다. 삼남매가 세상에서 소외받지 않고 자라는 것, 부모보다 더 따뜻한 가슴으로 삼남매를 보살피는 이들 부부의 바람이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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