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는 향수 제조업자인 장 밥티스트 그레뇰이 등장한다. 그는 출생과 더불어 생선 내장더미 속에 버려졌고, 그 과정에서 운동기능을 관장하는 뇌 영역 일부가 손상되었다. 정신 지체 수준이었던 그는 오늘날 같으면 학습장애라는 진단을 받을 만한 처지였다. 하지만 그레뇰은 다양한 향과 냄새에 민감한 재능이 그의 생존에 유리함을 일찌감치 알아차렸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숭배하게 만들며 원하는 사람의 사랑을 쟁취할 수도 있게 만드는 향을 마음껏 제조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레뇰은 엄격한 훈련 속으로 자신을 던져 넣어 마침내 최고의 향수 전문가가 된 독특한 인물이다.
백과사전 위키디피아에 의하면 학습이란 직간접적 경험이나 훈련에 의해 지속적으로 지각하고 인지하며 변화시키는 행동 변화이다. 소설 속의 그레뇰은 자신의 재능을 지각하고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마침내 초보자에서 전문가로 행동의 변화를 겪었다. 그렇다면 정상에서 상당히 벗어난 그레뇰 같은 사람도 전문가의 지도와 학습을 통해 한 분야의 전문성을 획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대한민국 부모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녀 교육이다. 큰딸이 수능 시험을 10여 일 앞둔 내게도 자녀의 학습 문제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자녀의 성적을 올리기 위한 부모의 노력은 눈물겨웠지만 성적 향상 프로젝트는 만만치가 않다. 과외비를 대기 위해 엄마들이 밤낮 가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는 신문 보도는 뉴스거리도 아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너무도 명백하지만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쉽게 찾을 수 없다.
학부모들은 어째서 이렇게 사교육에 매달리는가? 학생과 학부모가 믿고 의지해야 할 곳은 역시 학교요 공교육이다. 그럼에도 학생 학부모 모두 겉돌 수밖에 없는 데는 또 그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가 학습에 관심을 돌리게 된 것도 어쩌면 시대의 요구였는지도 모른다. 10년 전 학습클리닉을 시작했을 당시 우리는 성적의 변화가 아니라 평생 경험해가는 행동 변화의 과정으로 학습을 재정의하자는 것에서 출발했다.
도처에 학습클리닉 간판이 내걸리고, 학습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또 어떤 기대와 실망을 안겨 줄 것인가. 이 땅에 사는 어른으로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또 다른 짐을 얹는 것은 아닐까. 대체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길을 비춰주어야 할까. 장 밥티스트 그레뇰과 같은 사람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어쨌거나 그에게 적절한 스승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이제 자라는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김지애(인지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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