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요리하는 의사] 어루만짐

입력 2010-11-01 08:25:07

루이스 토머스(Lewis Thomas) 박사는 어루만짐은 진정한 의사의 비결이자 필수적인 기술이며, 의사의 가장 효과적인 치료라고 했다. 호스피스 의사는 환자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야한다. 어루만지다는 '가볍게 쓰다듬으며 만진다'는 뜻이다. 따스하고 섬세한 손길이 마약성 진통제보다 효과적이다.

이영호(75) 할아버지는 담낭암 환자였다. 할아버지는 한평생을 술 때문에 할머니와 가족을 힘들게 했었다. 시골 병원에서 말기 암 진단을 받고, 그 충격으로 3일 정도 정신을 잃었다. 머리 CT에는 특별한 것은 없었다. 육체를 전혀 움직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그때의 상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설명하였다. 사후의 생을 체험했다고 한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면, 정신을 잃을 정도였을까 싶어서 할아버지의 끔찍한 경험을 진심으로 가슴 아파 했다. 할아버지도 그런 일이 있은 뒤부터 과격한 성격이 점잖게 변하셨다. 자식이 살고 있는 대구로 왔지만, 이전부터 할아버지에게 상처 받았던 가족은 조금은 무관심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섭섭했다.

암은 육체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외로움은 정신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 호스피스 팀이 아픈 상처를 아무리 잘 어루만진다고 해도 따뜻한 가족의 손길만큼 따뜻할 수가 있을까? 암을 진단받은 후부터 암환자는 사회에서 소외되기 시작한다. 말기가 되면 사회나 가정에서 육체적으로 죽기 이전에 소외시켜버린다. 그래서 환자는 서글프다.

외로움, 절망감은 사람을 죽음으로 이끄는 마음의 암이기도 하지만, 단 한 번의 어루만짐으로 없앨 수 있는 잔병이기도 하다. 진심에서 우러난 따뜻한 몇 마디 말로 할아버지의 외로움을 치료할 수 있다.

우리의 작은 어루만짐이 다른 사람의 외로움을, 상처를 치유 할 수 있다. 자신의 외로움도 스스로 치유 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의 외로움을 어루만질 여유가 생긴다. 그래서 호스피스 활동을 하면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 자신의 죽음과 직면하게 된다. 죽음과 마주 서야, 나의 삶이 더 깊어진다.

접촉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강력한 비언어적 대화이다. 나의 환자와 가족에게 신체 접촉은 심지어 영양 섭취보다 훨씬 심오하다. 접촉과 어루만짐은 호스피스 치료의 기본이고 본질이며 핵심이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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