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저편의 어느 동네에선 평범한 여성들이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산모 사망률이 세계 2위인 아프가니스탄의 산모들은 간단한 의약품이 부족해 아이를 낳다가 죽어간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선 하루 평균 40여 건의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다. 성폭력의 대상은 무차별적이다. 태어난 지 11개월밖에 되지 않은 여자 아기에서부터 60세가 넘은 할머니까지, 여성들은 매일같이 성폭력의 위협에 떨고 있다. 게릴라 전투병들이 상대 부족이나 적에게 수치심을 안겨주기 위해 삼삼오오 다니며 집단 성폭행을 자행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쟁의 또 다른 모습이다. 역사상 모든 전쟁에는 여성들의 고통이 뒤따랐다. 일제 시대에 종군위안부가 등장했던 것처럼 말이다.
포토저널리스트 정은진(40) 씨는 이 같은 콩고의 성폭력 현실을 고발한 포토 스토리 '콩고의 눈물'로 2008년 프랑스의 세계적인 보도사진전 '페르피냥 포토 페스티벌'에서 상을 수상했다. 2007년에 아프가니스탄 산모 사망률을 다룬 사진으로 그랑프리상을 받은 직후다.
정 씨는 올해 권위 있는 앙코르 포토 페스티벌에서 '아시아 여성 사진가 15인'에 선정돼 11월 20일부터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현지에서 전시를 갖는다.
그는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제3세계 여성의 현실을 카메라를 통해 직시한다. 그리고 그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험악한 지역을 몸으로 부딪치며 사진을 찍는다. 서양 백인 기자들이 독점하다시피 한 세계 보도 사진계에서 그는 아시아인으로, 그것도 여성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01년 9·11 사태를 겪으며 보도 사진에 눈을 떴다.
"뉴욕은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어요. 그런데 뉴욕 한복판에서 테러가 일어나다니 너무나 충격적이었죠." 그때부터 그는 서방 세계와 이슬람 세력의 갈등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중동 분쟁의 원인을 찾기 위해 2002년 무작정 이스라엘로 향했다. 2006년부터는 보건 문제에 관심이 기울였다. "그곳은 전쟁으로 인한 정신질환, 지뢰로 인한 피해자, 가스 조리와 난방으로 인한 화상 등이 너무나 흔해요. 전쟁과 분쟁으로 사회 인프라가 무너지고 의료 체계가 무너져 치료받지 못하는 현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아프가니스탄 산모 사망률이 세계 2위라는 숫자 통계는 있었지만 최신 사진 보고서는 없었다. 그는 병원 안에서 여성의 고통에 눈뜨게 됐다. 이슬람 산부인과 병동에 절대 남자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여성인 그에게만 문을 열어주었다.
특히 그가 목격한 콩고민주공화국의 성폭력 문제는 심각하다. "콩고에선 성폭력이 무장 단체의 전략입니다. 성폭력으로 인한 수치심, 정신적 고통, 생식기의 훼손, 임신과 출산, 성병, 따돌림은 모두 여성의 몫이죠." 정 씨는 그곳에서 성폭행 후유증으로 죽는 여성도 허다하고 성폭력 후 상해를 가해 평생 기저귀를 하고 다녀야 하는 여성도 많다고 전한다.
이처럼 처참한 이야기가 수많은 뉴스 속에 묻혀 있던 것은 왜일까. 그는 남성 주도의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언론인의 대다수가 남성인데다 뉴스 메이커 또한 남성이라는 것. 정 씨는 미국 언론인의 80%가 남성이라는 통계를 예로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나 테러 자체를 보도하는 것에 그친다.
고통받는 여성 앞에서 그는 카메라 앵글을 사이에 두고 냉정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약자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하는 것이 언론인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한 해의 절반가량을 분쟁 지역에서 보낸다.
그는 28, 29일 대구 지역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주제는 '목숨 걸고 학교에 다니는 아프가니스탄의 청소년들'. 그는 아프가니스탄 청소년들의 현실을 우리 학생들에게 전했다.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은 여성이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항상 학교에 테러를 가합니다. 여교사를 암살하기도 하지요. 그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에는 오랜 전쟁 결과 전 국토가 지뢰밭이에요. 학교를 오기 위해선 말 그대로 목숨을 걸어야 하죠."
그는 이제 여성 문제가 전면에 대두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것을 빨리 앞당기는 것이 그의 몫이기도 하다. "아마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다른 일을 했겠죠? 지구 저편의 뉴스를 전달하는 게 저의 목적이니까요."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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