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할머니 Ⅱ

입력 2010-10-29 07:47:55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옹기 속에서 꺼내주신 빨간 홍시 맛

♥위독하실 때도 나만 찾아

할머니는 7남 3녀를 두셨는데 6·25때 할아버지와 7남매를 잃고 고모 둘과 10번째 막내아들인 아버지만 살아남았다. 나는 외아들의 첫 손녀라 할머니의 사랑이 대단하셨다. 다섯 살까지 혼자 밥을 잘 안 먹어 아이들 많은 집을 찾아다니며 밥을 먹였고 너무 순해 뒤통수가 납작한 나를 업고 다니며 '거세거라 거세거라 하늘같이 거세거라' 노래를 하셨다고 한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 할머니와 한방에서 지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좋으냐? 물으셨고 당연히 할머니 하면 "옳지 내 새끼" 하며 너무나 좋아하셨다.

내가 6학년이 되면서부터 편찮으셔서 1년 가까이 누워계셨는데 돌아가시기 한두 달 전부터 대소변을 받아야 했다. 부모님은 바쁜 농사일에 동생이 넷이다 보니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머니 수발은 어쩔 수 없이 내 몫이었다. 한여름날 모기장을 쳐놓은 방에서 대소변에 장난을 해 놓으셔서 엉엉 울면서 치우기를 여러 차례. 할머니가 점점 싫어졌다. 정신도 온전치 않아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셔서 무서웠다. 내 발자국 소리만 들리도 부르셔서 대답도 않고 뒤꿈치를 들고다녔지만 어린 마음에 죄를 짓는 것 같았다.

얼마 후 할머니가 위독하셔서 온가족이 모였는데 갑자기 힘든 숨을 쉬시며 나만 찾았다. 자꾸 옆에 오라는 손짓을 하시더니 내 손을 꼭 쥐고 돌아가셨다. 그날 밤 그렇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후회와 죄스러움에 목이 쉬도록 울고 또 울었다. 탤런트 사미자 씨를 꼭 닮은 귀엽고 씩씩했던 우리 할머니.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지난날을 추억하다 보니 할머니가 너무너무 보고 싶어 자꾸 눈물이 난다.

김진란(인터넷투고)

♥맨발도 달려와 안아주시고

어릴 적 아버지의 직업 따라 초등학교를 3번이나 옮겨 다녔다. 가는 곳마다 낯설었고 그때마다 외갓집이 그리웠다.

산골 마을 외가 동네는 나에게 제2의 고향이다. 그곳에서 초등학교 2년을 다니다가 전학을 왔기 때문에 방학만 되면 외갓집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낙동강이 굽이 도는 강변에 키다리 버드나무 가지에 매미소리가 정겨웠던 나의 외갓집. 나룻배를 타고 외가에 가는 길은 신났다. 외할머니는 내가 왔다는 소식에 논에서 일하시다가 흙내음 물씬 풍기는 맨발로 한숨에 달려와 안아주셨다. 새 떼를 쫓으며 들려 주셨던 옛날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재미있었다.

겨울방학 때면 뒷동산에 지게를 지고 땔감을 구해오기도 했다. 외할머니는 땔감을 해온 장한 손자 간식으로 옹기 깊숙이 넣어 두었던 살짝 언 홍시를 꺼내주셨다. 그 홍시 맛은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맛있었다.

매사에 부지런하고 검소하셨던 외할머니도 세월의 흐름 앞에서는 깊은 주름이 잡혀갔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외할머니가 불의의 사고로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다. 더 이상 외할머니가 주시는 빨간 홍시 맛은 볼 수가 없다. 찬바람이 불고 빨간 홍시가 많이 보이는 요즘 흑백 사진 속의 외할머니의 모습이 더욱 그리워진다.

진대식(대구 서구 내당동)

♥무릎에 누우면 부채질해 주시며…

한여름 아침상을 물리신 할아버지께서는 풀 망태를 메고 소를 먹이러 산으로 가시고 아버지께서는 들로 나가신다. 한낮이면 홰나무 그늘은 없어지고 마당에는 햇볕만 내리쬔다. 암탉이 알을 낳고 홰를 치며 내려온다. 할머니께서는 모이를 주신다. 어디서 놀다가 오는지 수탉은 모이 주는 소리에 날아든다. 사랑채의 그림자가 마당에 어지간히 내려지면 어머니께서는 저녁 준비에 바쁘셨다. 우리는 밭이 없어서 푸성귀가 귀했으므로 저녁은 주로 손국수다. 반찬 없이 먹는 음식으로는 으뜸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저녁마다 국수를 하신다. 땅거미가 내릴 때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들어오신다. 나는 고사리손으로 풀을 베어 모깃불을 놓는다. 앞산마루에 휘영청 밝은 달이 떠오르고 산들 바람이 지나갈 때면 모깃불 연기는 하늘을 향하여 오른다. 매운 연기에 콜록콜록 기침을 한다. 어둠이 짙게 내리면 미리내강이 하늘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흐르고 있을 때 별똥별이 낚시질을 한다. 도시 생활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정경이다. 저녁을 먹고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별을 헤아린다. 부채질 바람에 어느덧 손자는 잠이 든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번거롭지 않고 순박했던 옛정이 그리워진다. 맏손자라 사랑을 독차지했던 그리운 시절, 할머니의 치마폭 잡고 삽살개 앞세워서 저녁 마실 가던 그때가 그립다.

박효준(대구 달서구 송현2동)

♥할아버지 옆에 가신 것 '축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문자를 받았다. 다음 날 오전 11시에 예정된 입관식에 늦지 않기 위해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장례 절차를 진행하는 상조회 직원들이 안에서 할머니의 몸을 닦고 수의를 입히는 동안, 가족들은 밖에서 유리를 통해 진행되는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5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 할머니는 삶에 대한 애착이 없어지셨다. 몸에 별다른 이상이 없으신 데도 힘이 없어서 늘 누워만 계셨고 유난히 부부의 정이 깊으셨기에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견디실 수가 없었던 것 같았다.

상조회 직원은 할머니의 몸과 얼굴을 무척이나 꼼꼼하게 닦고 있었다. 할머니, 이렇게 꽃단장 하시고 이제 다시 할아버지께로 가시는군요. 무거운 육신을 내려놓으시고 이제는 새 옷 입으시고 훨훨 날아서 할아버지께로 가시네요.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흐르지 않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할머니를 보내야 하는 사람들이야 슬퍼서 지금 통곡을 하겠지만 정작 할머니 본인은 할아버지께 시집가던 날 다음으로 설레는 날이 아니었을까.

입관식을 마치고 하루를 보낸 후 다음날 노제를 위해 진도로 향했다. 두어 시간이 걸려 진도에 도착해 마을 분들과 다시 한 번 제례를 하고 나서 다시 화장터로 향했다. 화장을 마친 후에 할아버지가 계시는 곳으로 출발했다. 길가의 유채꽃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이렇듯 할머니를 기리는 많은 사람들과 나들이를 할 기회는 절대 없었을 것이다. 평일 오후의 이런 한가한 드라이브를 할머니는 즐기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묘 옆에 할머니의 유골함을 안장하고 장례식 초기의 무거웠던 분위기는 나들이 때문이었을까, 이제는 할아버지 옆에서 안식하게 된 할머니를 축하 드린다고 표현할 만큼이나 가벼워져 있었다. 날씨는 따사로웠고, 주변의 경치는 탁 트여서 시원했고 산이 지척이라 경관 또한 아름다웠다.

할머니! 이제는 지난 5년일랑 잊으시고 할아버지 옆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지내세요. 번잡한 가족사 따위는 깡그리 잊어버리시고 행복한 기억만 추억하시며 계세요.

전병태(대구 달성군 다사읍)

♥ 손·발톱 정리해 드린 게 전부

어릴 때 일이다. 할머니는 동네 마실을 나가셨다 하면 맛있는 것을 잘 가지고 오셨다. 산골 마을이라 과자도 귀하고 모든 것이 귀했는데 한번은 학교에 갔다가 오니 스텐 그릇을 내밀며 "어여, 이거 먹어!" 하는 것이다. 그릇 속에는 물렁물렁 녹아있는 쮸쮸바가 담겨 있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어서 보관할 길이 없던 터라 할머니는 스텐 그릇 속에 넣어두고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신 것 같았다.

다 녹아 물렁물렁해진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고 좋아라 신나 하는 모습을 보시면서 흐뭇해 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떠오른다. 할머니는 동네 마실을 나가시면 맛있는 것을 꼭 주머니에 넣어서 손자 손녀들을 위해 갖고 오신다. 그리고 손자 손녀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해 하시곤 하셨다.

한번은 할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배고프지?" 하시면서 허름한 식당으로 나를 데리고 가더니 "국수 하나 주이소" 하는 것이다. "할머니 국수 두 개 잖아요" 하면서 할머니를 툭툭 쳤더니 "아녀, 난 배 안 고파" 하는 것이다. 그때 당시에는 할머니 말씀이 진실이라는 것을 믿었는데 나이가 들어 생각해 보면 그것은 돈을 조금이라도 아낄 요량으로 자신은 점심을 굶으셨던 것이다.

그렇게 할머니의 사랑을 받으면서 컸지만 정작 커서 할머니가 편찮으셨을 때는 내가 한 것이라곤 손톱, 발톱 정리해 드린 것이 다였다. 그 뒤 몇 년을 보낸 뒤 할머니는 사람도 잘 못 알아보시더니 세상을 떠나셨다. 옛 추억을 더듬어 보면서 "할머니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라고 외치고 싶다.

이유정(대구 달서구 이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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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김성숙(대구 달서구 용산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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