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손 거치면 집집마다 도시가스 콸콸"…㈜대아건설

입력 2010-10-29 07:50:57

도시가스 배관, 배선

28일 오전 11시 수성구 중동 주택가에서 ㈜대아건설 직원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도시가스 배관작업을 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28일 오전 11시 수성구 중동 주택가에서 ㈜대아건설 직원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도시가스 배관작업을 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대아건설 김동수 대표
㈜대아건설 김동수 대표

둔탁한 중장비 굉음 속에서도 정(情)이 넘치는 회사가 있다. 작지만 활기찬 기업이 있다. 친형제처럼 서로를 살펴주는 까닭에 일터에선 항상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대구 수성구의 한 좁다란 골목길에서 겨울 문턱을 따뜻하게 지키는 ㈜대아건설 식구들을 만나봤다.

◆5인1조 환상의 팀워크

28일 수성구 중동 주택가. 너비 2m 남짓한 좁은 골목길 사이에 소형 굴삭기 소리가 요란했다. 굴삭기가 지나가는 자리에는 어른 허리 깊이, 50cm 너비의 골이 생겼다. 오전 5시 짙은 새벽어둠을 헤치고 나온 지 벌써 6시간째. 그러나 도시가스 배관·배선을 용접하고 매립해야 하는 등 아직 공사가 한참 남았다. 오후 5시쯤 땅거미가 스멀스멀 내릴 때가 돼서야 작업이 끝난다는 것.

"굵은 땀방울을 한 말은 더 쏟아야 해. 하지만 도시가스가 연결되지 않아 그간 불편하게 생활했던 할머니를 생각하면 절로 힘이 나지" 26년 경력의 베테랑 현장소장 전경식(52) 씨는 "돈보고 일하면 이 일을 못한다"며 "어머니, 아버지 같은 분들이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고생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힘든지 모르고 일한다"고 말했다.

빗자루를 든 채정희(49·여) 씨는 연방 싱글벙글이다. 굴삭기가 지나간 경로를 따라다니며 도로가로 떨어진 흙이나 먼지를 쓸어낸다. 채 씨가 지나갈 때마다 뿌옇던 도로가 제 색깔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나 비질은 그의 부전공이다. 채 씨는 신호수를 담당하고 있다. 공사를 하면 불가피하게 차량 통제를 해야 되고 이때 차량을 안전하게 되돌려 보내거나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늘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 말도 몰라요? 항상 웃는 얼굴로 통행자들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양복바지에 구두를 신고 산더미처럼 쌓인 흙두덩과 흙골 사이를 뛰어다니는 김동수(38·사진) 대표도 하는 일 없이(?) 바쁘다. 도면을 일일이 체크하는 사이 눌러쓴 안전모 사이에선 땀이 주르르 흐른다. 현장 경력이 모자란다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현장마다 일일이 찾아다니며 배우고 있다. 26년째 굴삭기 기사 생활을 하고 있는 박모 씨도 "무엇보다 배관공사는 팀워크가 중요하다"며 "도시가스 매설 공사는 보통 굴삭기기사, 용접기사, 배관기사, 신호수, 토목전문가 등 5인 1조로 움직이는 데 우리팀은 표정만 봐도 일 진행 상태나 과정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골목에서 희망을 쏘다

그날은 꿈에서도 잊을 수 없다. 2008년 7월 20일, 밤샘 공사를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국밥집에서 조촐한 파티를 가졌던 일은 생애 최고로 달콤했다. "작은 공사였지만 첫 공사를 따낸 뒤 그 감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죠". 처음이란 단어는 원래 설레고 기쁘지 않느냐는 김 대표는 "동대구고속버스터미널 주변 상호가 '할매국밥집'이었는데…."라며 또렷이 그날 밤을 기억하고 있었다.

골목에서 감격의 눈물을 쏟은 적도 있다. 올해 초 북구 복현동의 100여 가구에 도시가스를 연결한 것. "100여 가구의 주민들이 4년이나 도시가스 공급을 위해 노력했는데 외면할 수가 있어야죠." 김 대표는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지만 부모님 같은 주민들의 불편을 모른 채 할 수가 없었다"며 "구청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밤낮으로 공사를 이어갔고 도시가스를 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아건설은 골목에서 울고 웃는 등 길에서 희망을 쏘아 올린 기업이다. 골목을 누비며 도시가스 관을 설치하고 가정집에 도시가스를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3년 전만 해도 김 대표는 닭 사업에 뛰어들었다 큰 손해를 보고 벼랑 끝까지 몰렸다. "제가 하고 싶었던 일과 잘 아는 사업 분야를 택했어야 했는데, 주위 권유에 떠밀려 요식업에 손 된 게 화근이었어요". 이후 몇 달간 술에 절어 절망의 나날을 보냈지만 다시 힘을 냈다. 아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보라며 마지막 보류였던 적금통장을 깼다. 대구도시가스에서 10년간 근무를 하면서 익힌 노하우를 사업 아이템으로 잡았고 북구에 9.9㎡ 월세 사무실을 얻었다. 여직원 달랑 한 명. 그러나 할매국밥집 첫 공사 수주 이후 2년이 흐른 현재 직원 수가 40명으로 느는 등 사업을 확장했다. 현장인력 (20명)까지 합하면 규모를 몇 십 배나 키운 것이다. 김 대표는 "사업 초기 땐 여유 자금이 없어 월급도 한두 달 밀릴 때가 예사였다"며 "모두가 제일처럼 열성적으로 해준 직원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아건설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땅거미가 내리고 작업이 끝나갈 무렵. 김 대표가 한마디 건넸다. "내일이면 이 집도 도시가스가 콸콸 쏟아 질 겁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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