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춥다고 대충 안돼" 기습 한파속 새벽 환경미화

입력 2010-10-27 10:12:17

기습한파가 닥친 27일 새벽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환경미화원과 동행, 쓰레기 줍기 체험을 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기습한파가 닥친 27일 새벽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환경미화원과 동행, 쓰레기 줍기 체험을 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춥다 추워…."

기습 한파가 이틀째 이어진 27일 새벽 2시 대구 중구 동성로. 차가운 기운에 온몸이 움츠러들었다.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어둠에 젖은 동성로 새벽 거리가 눈에 익숙해지려 할 때쯤 저 멀리서 '달그락'하며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동성로 환경미화원들이었다. 오전 2시부터 매일 이곳을 청소하는 미화원들은 갑작스런 한파에도 묵묵히 거리를 쓸기 시작했다.

동성로 미화원들은 대구에서 가장 부지런한 '청소의 달인'들이다. 미화원들은 보통 4시~6시쯤 청소를 시작하는 것과 달리 이곳은 오전 2시까지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 동성로는 유동인구가 많고 가게가 밀집해 쓰레기 양이 대구에서 가장 많은 곳이다.

동성로를 담당하는 14명의 환경미화원들은 낮과 밤이 바뀌었다. 조춘식(59)씨는 "다른 사람들이 곤히 잠들 때 깨어나서 일하는 게 쉽지 않다"면서도 "그래도 22년 동안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서다"고 했다.

기자도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이진억(39)씨를 따라 공평동 일대의 도로에서 함께 청소를 했다. 빗질이 시작됐고 이씨가 한쪽을 쓸면 반대쪽 길을 청소했다. 한번에 쓰레기를 쓸어담는 이씨와 달리 몇번을 쓸어야 담을 수 있었다.

동성로에서 가장 골머리가 아픈 것은 담배꽁초와 전단지다. 특히 명함크기 전단지가 말썽이다. 바닥에 딱 붙어 아무리 빗질을 해도 꼼짝도 안해 손으로 직접 줍기를 반복했다. 한번에 담아내는 이씨를 따라해 봤지만 여전히 전단지는 꿈쩍도 안 했다.

이씨는 "비가 오면 전단지가 바닥에 착 붙어 쓸어담기가 정말 힘들다"며 "전단지를 뿌리는 사람들이 직접 이곳에서 청소해 봐야 함부로 돌리지 못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윽고 재활용품과 쓰레기 봉투들이 모여있는 곳에 도착해 쓰레기와 재활용을 분리시킨 뒤 바닥에 흩어진 쓰레기들을 쓸어담았다. 불법쓰레기투기 단속 CCTV가 설치된 곳까지 쓰레기가 넘쳐났다. 이씨는 "아직 시민 의식이 모자란다"며 "조금만 남을 배려하면 우리 일하기도 더 수월할 텐데…"라고 한숨을 쉬었다.

100m에 이르는 길을 청소하고 나서 다음 길로 접어들 때마다 이씨는 이미 청소한 곳을 뒤돌아 봤다. 청소 중에도 담배꽁초와 쓰레기를 버리는 '몰지각한' 시민들이 넘쳐나기 때문.

오전 5시 그동안 모은 쓰레기를 청소차에 담았다. 큰 마대자루가 가득 찼다. 3시간 가까이 추위 속에 일했더니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이씨의 얼굴도 차가운 바람에 벌겋게 변했다. 마지막으로 청소 구역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서 환경미화원들이 쉬는 창고로 향했다. 청소도구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서 몸을 녹이기 위해 불을 피웠다.

"춥다고 대충 할 수 있나. 어렵고 힘들어야 보람도 더 커지는 법이지." 모닥불 앞에서 얼었던 몸을 풀며 환하게 웃는 이씨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