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서 즐기는 '파크골프'
대구 북구 강변축구장 옆에 자리 잡은 대구파크골프장을 찾으면 잔디밭을 거닐며 골프 삼매경에 빠진 파크골프 동호인을 만날 수 있다. 수성구 동호인들은 매주 화·금요일 이곳을 이용한다. 이달 5일 점심 때가 지나자 남녀 동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금세 18홀 골프장이 북새통으로 변했다.
너른 잔디 위에서 홀컵에 공을 쳐 넣는 게 언뜻 봐서 골프 같다. 하지만 일반 골프장처럼 경기장이 크지도 않고, 클럽도 한 개뿐이다. 캐디도 카터도 없다. 공도 골프공의 두 배 정도로 크다. 잔디 위를 사뿐사뿐 걷는 모습이 여유롭게만 느껴진다. 홀 여기저기서 멋진 플레이에 대한 격려로, '나이스 샷'이 울려 퍼졌다. 홀 간격이 좁다 보니 옆에서 하는 플레이가 한눈에 들어오고 마주치는 동호인들은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 인사를 주고받는다.
◆클럽, 공 하나면 준비 끝
파크골프는 아직 일반인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스포츠다. 공원에서 즐기는 골프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골프경기처럼 드라이버, 우드, 아이언, 웨지, 퍼터 등 거리나 용도에 따라 클럽을 달리하지 않아도 된다. 길이 86㎝, 중량 600g의 채 하나만 있으면 준비는 끝이다. 간편하고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장점 때문에 최근 동호인 수가 급격히 늘었다. 대구에서만 2천 명 이상이 파크골프를 즐기고 있다.
매일 파크골프를 쳤던 수성구 동호인들이 일주일에 두 번, 정해진 요일에 치는 것도 대중화가 되면서 회원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성구 생활체육회가 대구에 파크골프를 도입할 때만 해도 즐기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수성구 생활체육회 이환조 국장은 "간단한 장비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어 관심 있는 몇 명이 대구에서 처음으로 파크골프를 치게 됐고, 운동효과가 알려지면서 급속하게 보급되고 있다"고 말했다.
2005년 2월 수성구 동호인들은 가장 먼저 파크골프를 생활체육연합회에 등록했다. 당시 등록인원 200명을 맞추기가 어려워 어려움을 겪었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수성구 지역에서는 마땅히 즐길 장소도 없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지금의 강변축구장이다. 잔디밭에 깃대를 꽂았으나 공을 넣을 홀컵이 없었다. 아이디어를 짜내 만든 게 둥그런 PVC 통을 잘라 땅에 박은 거였다. 하지만 뭔가 빠진 듯했다. 공이 홀컵에 들어가도 소리가 나지 않아 재미가 없었다. 이번엔 냄비 뚜껑을 홀컵 밑에 댔다.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는 게 제대로 골프 하는 맛을 줬다.
하나씩 아이디어를 내 꾸민 대구의 첫 파크골프장이었다. 지금은 지난해 대구에서 원조 파크골프장 옆에 새롭게 18홀 규모 골프장을 조성해 사용하지 않지만 가끔은 연습 라운딩을 위해 문을 연다. 대구에서는 현재 8개 구·군 모두 생활체육 조직 내에 파크골프연합회를 두고 있다.
파크골프가 편하게 즐길 수 있고, 비용이 적게 드는 장점 때문에 동호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 스윙이 골프와 비슷하지만 골프를 전혀 접하지 않은 사람도 30분 정도 교육을 받으면 바로 라운딩을 펼칠 수 있을 만큼 배우기가 간단하다.
경기 규칙은 골프와 비슷하다. 18홀을 도는 것을 1라운드로 한다. 다만 코스가 작아 1시간 30분 정도면 한 라운드를 돌 수 있다. 보통 체력에 대한 큰 부담 없이 몇 라운드를 돌 수 있다. 골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용도 싸다. 대구파크골프장은 무료로 누구에게나 개방돼 있다. 장비도 채와 공만 갖추면 끝이다. 일부 골프채는 100만원을 호가하기도 하지만 20만~30만원이면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다. 헤드가 일반 골프채와 달리 직각으로 편평해 공을 쳐도 뜨지 않고 구르도록 만들어졌다. 지금의 6㎝ 공은 합성수지로 만들어져 깨지지 않는다. 2만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 편한 복장으로 모자와 운동화 착용은 선택사항이다.
수성구 생활체육 파크골프연합회 장석채(68) 회장은 "골프와 달리 파크골프는 나무로 된 한 개의 클럽만을 사용해 모든 플레이를 한다. 상황에 따라 어떤 클럽을 써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고, 특별한 테크닉도 필요 없기 때문에 쉽게 배울 수 있다"고 했다. 대구에 파크골프장이 한 개뿐인 점은 아쉬운 대목. 지난해 강변축구장 옆에 문을 열었지만 18홀로 사용하기는 좁다. 직선거리로 530m정도 되는데 정식 9홀 기준 직선거리가 510m이니 18홀 정규골프장의 반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다.
◆관절 무리 없고, 소풍가는 기분으로 즐겨
파크골프는 보통 4명이 한 조를 이뤄 경기를 하는데 9홀 33타를 기준으로 한다. 18홀을 도는 데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걸린다. 9홀 기준 22타(11언더파)를 친다는 장 회장은 "잘 치는 요령이 있다"고 했다. 장 회장은 "티 박스에서 10~20m정도는 무릎 부근 정도로 공을 띄워야 깃대까지 공을 굴릴 수 있다"며 "공이 떠있는 거리가 멀면 깃대를 지나게 되고, 짧으면 타수가 늘어난다"고 했다. 힘껏 친다고 잘 치는 건 아니다. 예전 골프 잘 쳤던 사람들이 처음 파크골프를 접했을 때 멀리 보내려다 실수하는 경우가 많다. 허리를 사용하지 않고 어깨로만 공을 치니 힘이 약한 노인들이나 장애인들도 요령만 터득하면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3대가 함께 하는 스포츠로 인정받는 것도 체력 부담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정재린(70) 씨는 국궁을 하다 인대가 파손돼 파크골프로 바꿔 운동하고 있다. 대구시궁도협회 상임부회장을 역임하며 37년간 국궁에 열정을 쏟은 그는 7년전 인대가 끊어지면서 더 이상 활을 잡을 수 없게 된 후 파크골프를 접했다. 정 씨는 "힘보다는 기술이 필요하고 타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머리 속에서 전략을 구상해야 해 치매 예방에도 좋다"며 "한 시간 이상 운동을 하지만 잔디 위를 걸으니 관절에도 부담이 전혀 없다"고 했다.
김순희(57·여) 씨는 소풍가는 기분으로 파크골프장을 찾는다. 잔디 위에 앉아 집에서 싸온 간식을 나눠먹는 재미는 어릴 적 소풍 기억마저 되살린다. 배드민턴, 사이클 등 운동 마니아인 김 씨는 요즘 파크골프에 빠져 주 2회 라운딩으로는 모자라 밀양까지 원정 라운딩을 떠난다. 연회비 5만원만 내면 1년 내내 즐길 수 있다.
역시 가장 짜릿한 순간은 단번에 공이 홀컵으로 빨려 들어가는 홀인원. 홀 길이가 짧아 가끔 나오기 때문에 익숙한 회원들은 처음부터 홀인원에 도전하기도 한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