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미술, 자연 함께 어우러져…버려진 곳이 예술의 섬으로 채색
도시의 경쟁력이 강조되고 있다. 도시 경쟁력 중에는 산업적 강점도 있겠지만 우수한 문화와 문화적 토양도 빼놓을 수 없다.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는 스페인의 빌바오, 오페라하우스가 유명한 호주의 시드니, 미국의 뉴욕, 프랑스의 파리, 영국의 런던 등이 다 그러한 도시들이다.
일본 남부의 조그마한 나오시마 섬도 미술 프로젝트로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한국 작가 이우환의 미술관을 세운 곳도 나오시마이다. 대구도 문화적 토양이 비옥하고 미술 문화가 발달한 도시이다. '미술 콘텐츠'를 살려 도시의 경쟁력으로 삼을 만한 것이다. 미술 문화를 살려 경쟁력을 갖추게 된 국내외 도시를 살펴보고 대구의 현실도 비추어 본다.
섬 둘레 16㎞의 작은 섬 나오시마. 일본 혼슈 오카야마현과 시코쿠 가가와현 사이 세토 내해에 있는 수많은 섬들 가운데 하나인 나오시마는 오랜 세월 산업폐기물과 오염으로 방치돼 버려지다시피 한 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가 주목하는 '디자인과 예술의 섬'으로 거듭났다. 한 기업의 대대적인 미술 프로젝트와 세계적인 건축가의 만남으로 세계적 미술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것. 자연을 품에 안은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 미술사를 수놓는 유명 작가의 명화, 전통이 그대로 보존된 마을, 이 삼박자가 어우러져 매년 30만 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리안갤러리 안혜령 대표는 "별 볼일 없던 섬에 제대로 된 미술관 몇 개를 설치함으로써 자연경관과 더불어 세계적인 이목을 끌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면서 "섬 전체에 작품 수는 많지 않지만 건축물이 자연과 어우러지면서 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했다.
미술 자양분이 어느 도시보다 풍부한 대구에 나오시마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나오시마로 직접 향했다.
◆현대 미술과 건축의 섬, 나오시마
잊혀진 작은 섬 나오시마는 일본의 대표적인 교육 기업 '베네세' 재단의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이 1987년부터 이 섬을 현대 건축과 현대 미술의 복합공간으로 탈바꿈시키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섬 전체의 설계를 맡고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면서 짧은 시간에 세계적인 명소가 됐다.
후쿠다케 회장은 미술관을 세우기 전 섬마을 사람들을 위한 중학교와 마을회관, 선박 터미널 등 공공시설을 초현대식으로 짓는 일을 먼저 시작해 차츰 마을 사람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1992년 미술관과 호텔을 합친 고급 리조트 베네세 하우스 미술관을 문시작으로 폐가를 갤러리로 바꾼 아트하우스 프로젝트, 세계 최초의 땅속 미술관인 지추(地中) 미술관이 을 열었고 지난 6월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인 이우환 미술관이 개관했다.
일본 우노항에서 배로 20여 분, 200여 명의 승객들은 저마다 자동차나 자전거를 갖고 나오시마 섬으로 향했다. 섬 안에 무료 셔틀버스가 있지만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 차나 자전거를 갖고 가는 사람이 많다. 특히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눈에 띈다.
나오시마 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커다란 양철판으로 지붕을 얹은 선박 터미널을 만날 수 있다. 투명한 유리벽과 양철 지붕으로 단순함과 절제미를 극대화한 이 건물은 전체 섬의 분위기를 집약해 보여준다.
◆지추 미술관과 베네세 하우스 미술관
가장 먼저 도착한 지추 미술관. 그곳은 안도 다다오가 땅 속에 설계한 미술관이다. 밖에서는 매표소 건물만 보인다. 오전 10시 이전에 지추 미술관에 도착했지만 이미 100여 명 이상이 줄을 서 있다. 미술관 직원은 오후 2시나 돼야 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다고 안내한다. 15분마다 10명씩만 입장시키는 까닭이다. 지추 미술관은 안도 다다오가 오로지 세 미술가를 위해 건축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엔 클로드 모네, 제임스 터렐, 월터 드 마리아 세 작가의 작품 9점만이 전시된다. 내부는 물론 직원들까지 하얀 유니폼을 입고 있어 작품에 몰두할 수 있도록 했다.
지추 미술관이 땅속에 자리 잡았다면 베네세 하우스 미술관은 땅 위로 우뚝 솟은 미술관 겸 호텔이다. 베네세 하우스 미술관은 지금껏 봐온 네모난 미술관 구조와는 다르다. 지상 2층,지하 1층의 베네세 하우스는 일본 전통가옥의 특징을 현대적으로 살리면서도 독립적인 여러 개의 갤러리들이 연결돼 있는 듯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복도와 계단, 동선과 공간을 자유롭게 배치했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이 그렇듯, 이곳에도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뜻밖의 것을 만나는 반전이 곳곳에 숨어있다. 미술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로이 리히텐스타인, 키스 해링, 잭슨 폴록, 백남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건물 안과 밖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미술품이 전시돼 있다. 말 그대로 자연과 예술, 그리고 건축이 공존하는 것.
베네세 하우스의 숙박 공간은 우리나라 돈으로 1박에 80만원 정도로 고가이지만 3개월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인기다. 안도 다다오의 작품인데다 각 방마다 유명 작가의 작품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혼무라 집 프로젝트
혼무라 집 프로젝트는 나오시마의 명물로 손꼽힌다. 이 프로젝트는 살던 사람이 이사를 가거나 너무 오래돼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을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꾸며 작품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은 오래된 집을 보존하는 노력을 해왔지만 나오시마는 이 오래된 집을 예술 작품으로 탈바꿈시켜 눈길을 끌고 있다. 지금까지 일곱 채의 집이 새롭게 예술품으로 탄생했다.
200여 년 이상 오래된 집들이 늘어선 마을길은 관람객들을 시간 여행으로 이끈다. 바둑을 두던 기원, 제사를 지내던 신사, 치과의사의 집 등 마을의 풍경은 다양하다.
이 섬의 매력은 미술관뿐만 아니라 길에서 유명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 섬 곳곳에 니키 드 생팔, 쿠사마 야요이 등 유명 작가의 설치 작품이 설치돼 있다. 사람들은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 '빨간 호박' 위를 오르내리기도 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 자유롭게 감상하며 논다.
우연히 나오시마에서 마주친 정영애 대구YWCA 총재와 이영상 경북외국어대 총장은 "나오시마를 둘러보니 교통표지판 하나, 자전거 보관함 하나도 예술적 감각을 연결시켜 만들어 깜짝 놀랐다"면서 "예술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올 수 있고 경제적 이익을 창출해낼 수 있는 만큼 대구도 문화적 마인드를 높여 우리만의 문화 콘텐츠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일본 나오시마에서
글·사진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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