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라면 뭐든 하는 월街 탐욕을 게임의 법칙으로 재해석
'돈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
23년 만에 돌아온 속편 '월 스트리트 2'의 부제다. 돈에 울고, 돈에 웃고. 돈 만큼 강력한 괴물도 없다. 음흉하고 간사하면서도 솔직하고 소박한 것이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인간을 옥죈다. '잠들지 않는다'는 의인화된 표현 또한 그런 의미일 것이다.
사실 인간은 돈의 노예로 살고 있다. '세상에 가장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 뿐'이라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돈을 떠나서는 삶을 영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세계 금융의 중심, 돈의 최대의 둥지 월 스트리트는 늘 관심의 대상이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월 스트리트:머니 네버 슬립스'는 1987년 1편에 이어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촉발된 2008년 금융 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전작에서 증권 사기죄로 감옥에 간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러스)가 8년의 복역을 마치고 출소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전편에서 버드(찰리 쉰)와 손을 잡고 저가로 인수한 주식을 고가로 팔아 치우는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지만 버드의 배신으로 인해 주식거래법 위반으로 체포됐다.
한때 월 스트리트의 전설, 그러나 그의 행색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에게 남은 것은 실크 손수건, 돈 없는 머니 클립과 구식 핸드폰이 전부다. 아내는 떠나고, 마약을 하던 외동아들은 사고로 숨지고, 마지막 남은 딸 위니(캐리 멀리건)는 그와 의절한 상태다.
위니의 남자 친구 제이콥 무어(샤이아 라보프)는 월 스트리트의 촉망받는 펀드 매니저. 제이콥의 거대 투자회사가 누군가의 계략으로 하루아침에 망하고 스승으로 따르던 CEO는 뉴욕 지하철에 몸을 던진다. 그는 복수를 하기 위해 예비 장인 게코를 찾는다. 그 대가로 게코 부녀의 관계 회복을 돕겠다고 제안한다.
전작이 물신 숭배에 목을 매는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주제였다면, 이번에는 한 젊은 투자가의 복수극이다. 월 스트리트에 만연한 탐욕에 대한 비판은 더 이상 새롭거나 문제화될 여지가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탐욕은 좋은 것'이라고 설파하던 1987년 게코의 주장은 이제 거의 '합법화'되고, '정당화'됐다. 배신과 사기, 거짓은 탐욕의 미덕으로 인기 게임처럼 대우받는다.
'도덕적 해이'는 '내 돈을 먹고는 토해 내지 않는 것'이라는 정의에서 얼마나 돈을 맹신하는지, "자네가 나에 대한 거짓말을 퍼트리지 않으면, 나도 자네에 대한 사실을 말하지 않겠네."라는 대사에서 얼마나 거짓이 만연해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23년 전 풋풋했던 마이클 더글러스는 머리가 흰 중년이 됐고, 전편에 버드로 열연한 찰리 쉰 역시 카메오로 잠깐 등장해 불타는 대화를 나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샤이아 라보프가 마이클 더글러스란 백전노장을 맞아 분전한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월 스트리트의 인간들은 절대 신뢰할 수 없는 '종족'이라는 것을 끝까지 끌어낸다. 딸과 아버지, 그리고 예비 사위의 삼각 편대는 화해와 감성 무드로 흐르다가 일순간 산산조각난다. 월 스트리트에서 잔뼈가 굵은 게코는 모든 감정을 화폐 단위로 계산하며 역시 월가 게임의 거장임을 과시한다.
영화는 개봉 첫 주에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9월 24일부터 26일까지 첫 주말 사흘 간 3천565개 상영관에서 개봉해 1천9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미국 언론들도 올리버 스톤의 연출력을 높이 평가하며 세련된 위트를 겸비하고 있다고 평했다.
수십억 달러의 돈이 긴박하게 움직이고 수천 명의 가장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리는 등 올리버 스톤은 월 스트리트의 긴박감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도심의 스카이라인을 주가 그래프로 그려내는 화면적 풍자도 곁들인다.
그러나 일반 관객이 이 이야기를 실감하기는 어렵다. 수십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심정적으로 공감하는 것도 어려울 뿐 더러, 복수극이란 것도 선뜻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신체적 위협이 없는 경제사범이다 보니 스릴러적인 알싸한 맛이 없는 편이다.
올리버 스톤이란 거장의 내공은 느껴지지만, 맛깔스럽지는 않은, 마치 조미료를 쓰지 않는 천연 재료 식당의 성찬같은 영화다. 12세 관람가. 러닝 타임 131분.
김중기 객원기자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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