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는 불가피하게 계층이 있기 마련이다. 조선시대에는 출신에 따라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나뉘었지만, 21세기의 대한민국에는 부(富)와 거주지에 따라 계층이 나누어진다. 오늘날의 한국사회는 지배계층인 '서울특별시민'을 정점으로 '서울보통시민' 그리고 '지방특별시민'과 '지방보통시민', 이렇게 4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서울특별시민은 우리나라의 모든 정책결정을 주도하는 계층으로 거주지는 서울특별시 중에서도 특정동네에 살면서, 서울의 폭등하는 아파트값이나 자녀교육을 위한 학군문제 그리고 출퇴근 교통지옥에 시달리지 않고, 서울의 고급 문화생활을 즐기는 계층이다. 고위공무원'국회의원'기업가'언론인 같은 권력이나 돈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교수'의사'변호사 등 사(士)자 붙은 전문직들이 여기에 속한다.
서울보통시민은 서울의 강북 변두리지역이나 인천'경기도 등 수도권으로 불리는 광역서울특별시에 살고 있다. 이들은 교통난'주택난'교육난 때문에 고달픈 삶을 살긴 하지만, 서울의 좋은 교육환경을 잘만 활용하면 자식들은 서울특별시민으로 신분상승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이들이 시끄럽게 굴면 '서울특별시민'들이 행복하게 삶을 영위하는데 지장을 받기 때문에, MB정부 '친서민정책'의 핵심타깃은 이들 서울보통시민이다. 정부는 이들에게 그린벨트를 풀어 반값 아파트인 보금자리주택을 지어주고, 수도권 일대에 거미줄 같은 지하철망을 깔아주고, 동사무소나 대기업 부설 문화원 등에서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수도권에 서울특별시민과 서울보통시민이 있다면, 지방에는 '지방특별시민'과 '지방보통시민'이 살고 있다. 지방특별시민은 지방정부의 정책수립과 집행에 참여하면서, 서울특별시민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는 지자체의 고위공무원'지방의원'잘나가는 지방기업인'교수'전문직 종사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중앙정부의 각종 지역사업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중앙을 향한 지방의 예산 구걸 행각에도 참여한다. 실제로 지역정책이란 이름으로 중앙정부로부터 많은 돈이 내려왔고, 지금도 적지 않게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지방특별시민' 위주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고, 지방보통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평가이다.
지방이 무너져 가고 있다고 아우성이지만, 지방특별시민은 집값 싸고, 교통 좋고, 물가 싼 지방에서 안정된 직장까지 있고, 또 큰 야심도 없으니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 이들은 여윳돈으로 서울 가서 쇼핑하고, 서울 병원에서 진료하고, 가끔은 서울특별시민들과 비싼 돈 내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기도 한다. 이런 지방특별시민들에게 오로지 걱정이 있다면 자녀교육문제다. 요즈음은 중'고교시절부터 서울로 유학가야 일류대학'일류직장'일류배우자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에 사는 극빈층'노인'장애인 등 '지방영세민'들은 법 규정에 따라 충분치는 않아도 정부의 각종 복지혜택을 받고 있지만, '지방보통시민'들은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하는 정부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들은 중소기업에 종사하거나 식당이나 동네슈퍼 등을 영위하는 자영업자들이 대부분이다. 과거 산업화시절 나라경제 전체가 고도성장할 때는 이들의 생활수준도 덩달아 높아졌지만, 오늘날 세계화시대에는 빈부격차'지역격차 등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다 보니, 이들의 삶은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힘이 없으니 정치세력화 할 수도 없고, 그래서 항상 정부정책의 관심밖에 있다.
우리 국민의 절반은 수도권에 살고 있고, 나머지 절반에 해당하는 지방 사람들 중 지방특별시민과 지방영세민을 빼고 나면, '지방보통시민'은 지방주민의 3분의2인 대략 1천500만 명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희망을 갖고 잘 살 수 있는 길은 지방특별시민으로 신분상승을 하는 길인데, 당대에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차선책으로 해야 할 것이 정부의 지역정책 패러다임을 '지방특별시민'으로부터 '지방보통시민'에게로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이들이 어렵지 않게 괜찮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고, 양질의 자녀교육을 시킬 수 있으며, 어느 정도의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방정책이 변해야 한다.
'지방보통시민'이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의 중심에 놓일 때, 비로소 '친서민정책'은 효력을 발생하고,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국진입도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대구경북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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