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우리 정부 통계, 특히 농업 통계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공무원들이 현장 조사 대신 책상머리에서 작성하는 통계였으니 엉터리인 게 당연했다. 농'특산물 재배 현황도 정부나 지자체보다 중간 상인이나 농산물 수출업체의 통계가 더 정확했다. 그래서 당시 농민들이 터득한 지혜가 '정부 지도'와 거꾸로 작물을 심는 것이었다. 양파를 심지 말라 하면 심고, 마늘을 파종하라면 고추를 심었다.
농산물값은 등락 폭이 크다. 공산품처럼 출하 시기와 수급 조절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농산물 유통업자는 농산물의 이러한 특성을 노리고 수확 전에 농민과 미리 '밭떼기' 계약을 맺는다. 밭떼기 거래를 하면 농민은 미리 정해진 가격에 자기 밭에서 난 생산물을 모두 넘기게 된다. 최근 배추 파동을 빚으며 배추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지만 농민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지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농산물값이 크게 하락할 경우 밭떼기 거래가 농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계약대로 거래된다면 분명 농민들에게 이득이다. 하지만 농산물값이 폭락했음에도 당초 계약대로 밭떼기 거래를 하는 순진한 농산물 유통업자는 없다. 대부분 구두로 밭떼기 계약을 하는데다 '힘센' 유통업자를 상대로 계약 파기를 시비할 수 있는 농민도 없다.
김장철 배추값 폭락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배추값이 치솟자, 농민들이 마늘 양파 등을 갈아엎고 배추를 심어 재배 면적이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배추 산지에서는 이미 밭떼기 거래가 중단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다른 작물까지 포기하고 배추를 심었던 농민들은 배추밭을 갈아엎어야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김장철 배추값이 급락할 경우 김치공장에 긴급 자금을 지원해 배추를 사들이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최근의 배추 파동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바가지로 욕을 먹은 탓인지 이번엔 사전 대처 방안을 세운 모양이다. 하지만 미봉책 대신 전근대적인 우리 농산물 유통 구조를 혁신하는 근본 대책을 내놔야 한다. 배추 밭떼기를 통한 매점매석 행위로 도마에 오른 우리 대형소매점뿐 아니라 세계 최대 할인매장 체인인 월마트까지 신흥시장의 100만 농가와 밭떼기 계약에 나선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게다.
조영창 논설위원 cyc58@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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