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국내 첫 부부마술사 "눈빛만 봐도 호흡 척척"

입력 2010-10-15 07:16:06

대구 북구 읍내동에 위치한 한 경로당. 무대에서 풍선이 터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비둘기가 날아올랐다. 이를 지켜보던 노인들로부터 탄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온다. 한효익(28)·윤정은(26) 씨 부부의 마술공연에 어느새 경로당은 버라이어티 공연장으로 변했다.

한 씨 부부에게는 항상 국내 최초 부부마술사라는 타이틀이 따라붙는다. 이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들 부부는 앳되어 보이지만 벌써 4살과 2살 된 남매를 두고 있다. "아내와 함께 공연하면 말이 필요 없고 편해요. 눈빛만 봐도 서로 통하니까요."

한 씨는 고교 2학년 때 취미로 마술을 시작했다. 부모의 이혼으로 마산에서 대구로 올라와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학교 선생님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받아 학비를 대신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충당했다. 졸업 후 서울로 올라가서 매직바에서 일을 하며 본격적으로 마술을 익혔고 전국을 거쳐 대구의 마술업체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초반에는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당하기도 했다. 차비가 없어서 셋방이 있던 두류동에서 수성동까지 걸어다니며 마술 연습에 몰두했다. 그 결과 3개월 만에 결심했던 메인 마술사가 되었다.

마술사로 활동을 시작할 무렵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서로 사고무친(四顧無親)의 외로운 신세였기에 가까워졌고 월 30만원이 수입의 전부인데 덜컥 아이가 생겼다. 20대 초반에 부모가 되고 그때부터 한 씨는 세차장 아르바이트 등 밤낮으로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마술을 배우고 싶다고 나섰다. 힘들다며 말렸지만 아내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처음에는 야속하고 서운했겠지만 연습에서 아내의 조그만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어요. 그런 혹독한 훈련들이 지금까지 아내와 함께 마술사로 활동하게 된 것 같아요"

각종 제안서를 만들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돌렸고 5만원의 출연료를 받으며 유치원 어린이들에게 마술공연을 펼쳤다. 처음에는 자동차도 없이 버스를 타고 나타난 젊은 마술사를 보고 탐탁지 않게 여기던 사람들도 이들의 마술에 빠져들었고 차츰 입소문을 타고 찾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늘 공연장에 데리고 갔어요. 아이를 재워 눕혀놓고 무대에 오르면 진행 관계자들이 봐주기도 했죠."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아는 선배의 도움으로 사진관 2층에 15㎡ 짜리 사무실을 빌려 마술학원을 시작했다. 수강생들이 늘고 학원이 점차 커져 2년간 호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학원이 잘 될수록 정작 공연은 하기 힘들어졌다. 한 씨는 과감히 학원을 정리하고 지금의 엔터테인먼트 매직사업부 대표를 맡아서 매직 퍼포먼스와 기획 등 마술공연 사업을 펼치며 대경대학에 강의도 나가고 있다. 미루었던 결혼식도 지난 5월에 올렸다. "딸이 크면 마술을 가르쳐 가족 마술사로 활동하고 싶어요." 이들 부부의 바람은 소박했다.

글·사진 정용백 시민기자 dragon102j@korea.com

멘토: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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