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 리뷰] 심야의 FM

입력 2010-10-14 07:35:40

"일탈? 질러봐요" 무책임한 한마디, 지독한 현실이 된다면…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심야에 영화음악을 전문으로 방송하는 FM 인기 DJ 고선영(수애)이 고별 방송을 시작한다. 많은 팬들이 아쉬워하는 가운데 그녀는 방송 중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방송을 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네 가족을 죽여버리겠어!"

그 남자는 선영의 여동생과 딸을 인질로 잡고 자기가 시키는 대로 방송을 하라고 협박한다. 5년 전 방송의 몇 번째 곡을 틀고, 또 토씨 하나 틀리지 말고 예전의 멘트를 하라고 주문한다. "그게 아니잖아. 왜 내 말을 듣지 않아!" 주문 내용과 다르면 여동생의 손가락을 자르는 등 잔혹한 모습을 보인다.

그 남자는 고선영의 방송을 모두 기억하는 열혈팬 한동수(유지태)다. 누구도 이 사실을 알아서도 안 되고, 방송이 끊겨도 안 된다. 선영은 딸과 동생을 지키기 위해 이 남자와 필사적인 사투를 벌인다.

'심야의 FM'은 광적인 팬과 여자 DJ의 사투를 그린 스릴러 영화다. 모든 것이 노출된 스타와 광적인 팬의 대결과 사투는 그리 신선한 소재가 아니다. 토니 스콧 감독의 '더 팬'(1996년)에서 유명한 야구 선수 웨슬리 스나입스와 그의 광팬 로버트 드니로가 목숨 건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심야의 FM'은 더 정교하고 치밀하면서도 아기자기하게 꾸며내 100분 동안 관객들을 스크린 속으로 끌어들인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스튜디오와 생방송이라는 한계 상황 속이어서 더욱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방송시간 2시간에 맞춰 영화는 스피디하게 달려간다. 동수의 주문에 맞춰 선영은 노래를 찾기 위해 방송국 음반실을 뛰어다니고, 집에서도 어린 딸은 동수를 피해 집안에서 숨바꼭질한다. 노래가 끝나고 '온 에어'가 들어오면 숨이 막힌다.

긴장과 이완의 강약 조절과 함께 상황을 레벨업시키면서 마치 컴퓨터 게임처럼 풀어나간다. 둘만의 암호로 시작된 방송이 급기야 전국적인 이슈가 되고, 스튜디오가 폐쇄되자 동수 몰래 중계차를 동원해 도로에 나서 그를 추적한다.

동수의 말과 영상 통화에서 단서를 찾고, 말 못하는 어린 딸과 전화기를 두들겨 신호를 주고받는다. 자동차 추격전을 벌이고, 난투극을 벌이는 등 영화는 스릴러의 모든 장치를 동원하고 있다. 동수처럼 선영의 방송 모든 것을 외우고 있는 착한 스토커까지 등장시켜 선영을 헌신적으로 도운다.

'그해 여름'의 정인처럼 단아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연기해 온 수애는 거친 욕을 하면서도 끝까지 무너지지 않는 강인한 엄마를 잘 연기하고 있다. 유지태 또한 악역을 잘 소화하고 있지만 '올드 보이'가 연상되는 통에 식상한 느낌도 없지 않다.

영화에서 동수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에 나오는 트래비스(로버트 드 니로)가 되고 싶은 인물이다. 선영이 '택시 드라이버'의 O.S.T를 틀면서 "정의가 살아 있는지 궁금하다" "이 시대의 영웅이 필요하다"는 말에 따라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마치 선영의 말을 지령처럼 받아들이면서 사회의 쓰레기를 처단한다.

선영의 감상적인 멘트가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나타내는지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다. 선영과 동수는 전혀 다른 인물이지만 반사회성에서는 닮은꼴도 있다. 그래서 청취자들의 입맛에 영합하기 위한 일부 방송인들의 무책임하고 달착지근한 방송 진행에 대한 경고도 드러낸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 택시에서 "일탈하고 싶다고요. 우리 한번 질러봐요"라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이 얼마나 위험한 발언인가. 그 순간 선영은 제발 방송을 꺼달라고 말한다.

이 영화는 '걸 스카우트'를 연출한 김상만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영상물등급위원회에 '15세 이상 관람가'를 신청했지만 아이를 납치한다는 설정이나 일부 잔인한 장면 때문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러닝 타임 100분.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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