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태어나서 만 1세가 되면 생기는 감정 중에 '호기심' 이란 것이 있다. 나를 비롯하여 나를 둘러싼 외부의 대상이 궁금해지고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고 들여다보게 되는 시기가 겨우 만 1세라는 사실은 경이롭다.
최근에 발견된 '글리제 581g'는 표면에 물이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기후나 중력이 지구와 비슷하여 생명체가 살 가능성이 매우 높은 행성이라고 한다. '글리제 581g'는 지구로부터 약 20광년 떨어진 천칭자리의 별인 '글리제 581' 주위에서 발견된 행성이다. 인간이 지구 중심의 협소한 세계에서 벗어나 광활하게 팽창하는 우주로 인식의 눈을 넓혀간 것도 따지고 보면 궁금한 것을 쫓아간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 허블 같은 천문학자들의 호기심 때문이 아니겠는가.
언젠가 숲길을 걷다가 다섯 살 남짓한 남자 아이가 엉덩이를 치켜들고 삼매경에 빠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발그레 달아오른 뺨으로 사뭇 진지하게 무언가 들여다보고 있기에 궁금해져서 가던 길을 멈추고 함께 보았다. 이쪽 미루나무 밑동에서 저편 은사시나무 아래까지 족히 몇 미터는 되어 보이는 개미떼의 행렬이었다. 따가운 여름 햇살 아래 땀방울 송송 맺힌 녀석의 호기심이 귀엽고 예뻐서 녀석은 개미떼를, 나는 녀석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막 태어나는 별처럼 영롱하게 반짝이던 그 눈빛이라니!
어릴 때 나는 유별나게 호기심이 많아서 집에 새것이 들어오면 반드시 어찌어찌 들쑤셔서 사달을 내놓았다고 한다. 한번은 아버지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받아오는 길에 주전자째 반절은 넘게 마시고 취해버리는 바람에 혼쭐이 났던 적도 있었는데 그때 왜 술을 마셨느냐는 아버지 호통에 어린 내가 내놓은 이유가 '무슨 맛인지 너무 궁금해서'였다고 한다. 그 호기심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고 또한 살아갈 근사한 이유를 제공할 것이라 믿는다.
자기 밖의 무엇을 사랑하거나 좋아하는데도 호기심의 인력이 작용한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처음 만나는 그것에 대하여 궁금증이 생겨야 다음이라는 여지가 생긴다. 그것에 대하여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어떤 노래를 좋아하고 그녀가 춤추는 모습은 어떨까. 어떤 순간에 그는 가장 환하게 웃을까. 얼마 전 감동 깊게 읽었던 책을 그녀도 읽었을까. 궁금해서 다시 만나고 궁금해서 함께 더 있고 싶고 내 앞의 존재가 깊이 궁금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사랑이란 것을 시작한다.
호기심이란 불꽃과도 같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잭 스패로우 선장은 갑판 위에서 엘리자베스에게 근사한 말을 던져서 나를 사로잡았다. 인간의 말 중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인 '호기심'에 관한 말. 나는 여전히 당신이 궁금하다.
원태경<내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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