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대(代)에 끝내려 했는데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A섬유회사 이기억(가명·63) 대표는 얼마 전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을 불러들였다. 30년간 경영해오던 회사를 맡기기 위해서다. 그러나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 대표는 회사를 자식 대에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섬유 산업이 비전이 없는데다 3D 업종이란 인식이 강해 직원 관리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간 섬유 산업의 미래가 불투명해 내 대에서 회사를 끝내려고 했지만 지금 상황에선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게임이라고 본다"며 "아들이 회사를 잘 키워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섬유 산업 '불임→가임'으로=대구 섬유 산업이 '불임'(不姙)에서 '가임'(可姙) 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스마트 섬유 개발과 수출 호조 등 섬유 산업에 잇따라 파란불이 켜지면서 섬유에는 관심이 없던 2세들이 속속 섬유 업계로 뛰어들고 있는 것. 덩달아 섬유 산업 청사진도 한층 밝아지고 있다.
B섬유업체 이상희(가명·35) 전무도 교수의 꿈을 과감히 접었다. 지난해부터 아버지가 운영하는 섬유 회사에 뛰어들었다. 이 씨는 "미국 MBA와 카이스트 학위를 마쳤지만 아버지의 경영 노하우와 젊은 패기를 섬유 산업에 접목시킨다면 섬유 산업이 더 이상 사양 산업으로 방치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이 2006년부터 시행해오고 있는 '섬유 산업 차세대 리더 양성 과정'에 젊은 CEO들이 몰리고 있다. 14주 과정의 섬유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2세 CEO들은 외국 섬유기술 동향, 섬유 트렌드, 마케팅 기법을 배우고 국내 주요 섬유 전시회장을 찾는 등 신경을 섬유에 정조준하고 있다.
황만호 대구경북섬유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섬유 업계 호황에 힘입어 불과 3, 4년 사이 공장을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경향이 짙어졌다"며 "'절대 회사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과거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라고 말했다.
◆대구 섬유 르네상스 오나?=젊은 CEO로의 세대교체는 대구 섬유 업계의 르네상스를 예고하고 있다. 이들은 기업 부설연구소를 만드는 등 R&D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한편, ▷다품종 소량 업종으로의 전환 ▷틈새시장 공략 ▷리엔지니어링(reengineering) 등으로 '대구=섬유 도시'라는 과거의 명성을 되찾고 있다. 이와 함께 섬유업계에서 금기시돼 왔던 주 5일 근무제, 슬리퍼를 신고 출근하는 공원 같은 회사, 근로복지 확대 등을 통해 '3D 업종=섬유'라는 공식도 깨 나가고 있다.
대구경북 섬유 기업 부설 연구소 설립 현황에 따르면 2006년 53개에 불과했던 연구소 수가 2010년 6월 현재 140개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연구원 수도 241명에서 469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전국 연구소 수는 163개에서 268개로 소폭 늘었다.
대구 섬유 업계도 쾌속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이 대구 130개 섬유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섬유경기 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대구 섬유 수출 실적은 2억2천73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1억7천980만달러)에 비해 26.5% 증가했고 9, 10월에도 경기전망을 밝게 보는 업체가 대다수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 1월부터 8월 말까지 부도 업체 수도 4개에 불과했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 문종상 책임연구원은 "최근 대구 섬유 업계엔 R&D 투자 바람이 활발히 이는 등 대구 섬유 업계의 새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며 "이 중심에는 새로운 경영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대구 섬유 업계의 체질을 개선하려는 젊은 CEO들이 서 있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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