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1학년 때 밤이슬을 맞으며 산속 기숙사로 돌아가다가 당시 유행하던 소련A형 독감에 걸린 적이 있었다. 한 번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기침 때문에 수업 중에 강의실 밖으로 나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1년 동안 병원에 다니며 약도 먹고 주사도 맞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급기야 기관지 실핏줄이 터져 학기 중에 낙향하여 집에 드러누웠다. 답답하게 지켜보시던 엄마가 어느 날 팔공산 갓바위에 가시더니 약방문 하나를 가져오셨다. 칠성시장에서 재료를 구하여 처방대로 하였더니 목이 부드러워지고 기침은 멈추었다. 다음날 바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고 강의시간에 더 이상 기침하지 않았다. 그 후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하면 즉시 그 재료들을 구해 처방대로 하였고 그때마다 기침은 멎었다.
대학원 1년 때 우연히 TV에서 '댁의 비방을 찾습니다'라는 제약회사 광고를 보았다. 전국에 숨어있는 민간요법을 현상 공모한다는 것이다. 갓바위 처방을 떠올리고 이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 달라는 편지를 방송국으로 보냈더니 담당자가 정식 응모한 것으로 처리하려 하니 제조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7가지 재료 즉, 손바닥 크기의 해삼 10마리, 말린 귤껍질 5개, 무 20㎝, 모과 1개, 대추 1홉, 생강 1쪽, 깐 호두 10개를 함께 물 2ℓ에 넣고 한 사발이 될 때까지 달여서 공복에 마신 후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 내기를 두세 번 되풀이 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그 처방은 5천여 건의 응모작 중에서 최우수작에 당선되었고 나는 난생 처음 방송국 인터뷰라는 것을 하였다. 심사위원은 그 처방이 유해하지 않고 근거가 있으며 상품화도 가능하다고 호평하였다. 인터뷰는 방송을 탔고 일간지에도 실려 그때 나는 한동안 적지 않은 유명세를 치러야 했다. 일전에 갓바위에 올라 자세히 보니 약사여래부처님의 왼손에는 작은 약병이 들려져 있었다.
얼마 전 헌법재판소는 비의료인이 민간요법을 포함한 대체의학 시술을 하는 것은 무면허 의료행위라 하여 금지하는 의료법이 합헌임을 재확인하였다. 민간요법과 대체의학 시술은 국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치료법이며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권 치료에 의해 치료불가 판정을 받은 환자가 민간요법이나 대체치료에 의하여 효과를 보았다는 경우는 적지 않다. 국가가 환자의 치료를 막아서는 것은 아닌지. 오히려 그러한 치료법의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하여 이들을 제도권 내로 편입시키거나 별도의 제도를 둠으로써 국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 갑자기 그때 현상공모에 응모했던 수천 건의 나머지 민간요법들은 어떤 것들이었는지 궁금해진다.
임주현(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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