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세종대왕의 리더십

입력 2010-10-09 07:55:27

동래현의 관노였던 장영실이 조선시대 과학의 선구자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세종대왕의 혜안 덕분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귀화한 중국인이며, 어머니는 기녀. 노비로 출발했던 그는 세종대왕에 의해 발탁되면서 세계 최초의 측우기와 해시계(혼천의'渾天儀), 물시계(자격루'自擊漏)를 만드는 등 15세기 조선을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국가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 공로로 그는 조선시대 과학기술 분야 서열 3위인 상호군(上護軍)의 지위에 올랐다.

엄격한 신분 사회에서 노비가 종3품의 벼슬에 오른 것은 세종대왕의 탁월한 '인재 경영' 원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가 발전에 신분이 무슨 소용인가. 대왕은 '미덥지 못하면 맡기지 말고, 일단 썼으면 믿고 맡겨라'(疑人不用 用而不疑)는 인재관을 갖고 있었다.

세종대왕은 무관 출신의 뛰어난 공학자 이천과 문관인 정인지, 정초, 김담 등 과학기술 이론가들이 이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도록 해 우리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가꾸고 그 힘을 바탕으로 국방을 공고히 했다.

세종대왕의 국가 경영을 뒷받침한 것이 '인간 존중' 철학이다. 백성은 양반이나 평민, 심지어 노비도 따뜻함으로 감싸안았다. 집현전 학사 권채는 세종대왕이 지극히 아끼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노비를 심하게 핍박하며 굶겨 아사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 사실을 알고 관직을 삭탈했다. 대왕은 또한 꽃다운 궁녀들이 부자유스러운 생활을 하는 궁궐에서 젊음을 보내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젊은 궁녀 500여 명을 해방시키기도 했다.

대왕의 인간 존중 백미는 '한글 창제'. '어린 백성이 알리고자 하여도 그 뜻을 글로 옮기지 못하니 이를 불쌍히 여겨 글을 만든다'는 훈민정음 창제문은 대왕의 백성 사랑 마음을 한눈에 알게 한다. 그는 한글을 만들고 통치 철학의 기초를 마련하던 집현전 학사들이 지쳐 잠들면 용포(임금의 옷)를 덮어주는 따뜻함도 가졌다.

이런 세종대왕의 국가 경영 원칙은 오늘날 모두가 본받아야 할 모범 답안이다. 특히 조직의 수장들은 세종대왕의 인재관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전임자의 신임을 받았다고 배제해 버리고, 학연'지연'혈연에 따른 인사로 조직을 멍들게 한다면 그 조직은 생존 가능성을 잃어버린다.

9일은 564돌 한글날이다. 이날만이라도 세종대왕의 조직 경영 철학을 본받자.

최정암 동부지역본부장 jeong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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