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못냈던 사랑…이루고 나니 50년이 훌쩍 백발의 해후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사랑은 인류 최고의 이야깃거리다. 퍼내도 끝이 없는 화수분이 따로 없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사랑을 노래하고 슬퍼하고, 고통스런 작별을 고하기도 했지만, 그것 또한 사랑의 전부는 아닐 터. 이 세상은 무수한 사랑이 눈발처럼 날리고, 얼고, 녹고 또 흘러간다.
이번 주에 개봉한 '레터스 투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환상을 현대에 옮긴 멜로 영화다. 50년 전 가슴 시린 러브레터가 현대 여주인공의 마음을 흔드는데 그것은 진정한 사랑 찾기에 나태하지 말라는 경구다.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는 한 잡지사에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자료조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작가지망생이다. 요리사인 약혼자 빅토(가엘 가르시아 베르날)가 있지만 그 남자는 소피보다는 요리에 더 빠져 있다.
식당 개업을 앞두고 둘은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고 거기에서마저 빅토는 버섯과 포도주를 보러가야 된다면서 소피를 혼자 남겨 둔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인 도시 베로나를 둘러보던 중 줄리엣 하우스에서 젊은 여성들이 붐비는 것을 보게 된다. 세계 각지에서 온 여성들이 줄리엣 앞으로 자신의 사랑 고민을 편지로 써서 담벼락에 붙이는 모습이다.
그 편지들은 모두 모아 '줄리엣의 비서'라는 여공무원들이 답장을 쓴다. 소피는 우연히 벽돌 안에 숨겨진 50년 전 편지를 발견한다. 부모님의 반대가 두려워 사랑하는 로렌조(프랑코 네로)의 프로포즈를 거절하고 도망친 클레어(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애절한 편지다. 소피는 클레어의 편지에 답장을 쓰고, 며칠 후 그녀 앞에 클레어와 그녀의 손자 찰리(크리스토퍼 이건)가 나타난다. 백발이 된 클레어는 소피의 편지에 용기를 내고 50년 전 헤어졌던 로렌조를 찾아 나선다.
'레터스 투 줄리엣'은 줄리엣처럼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 목숨까지 내건 사랑의 판타지를 현대적인 감성으로 그린 로맨틱 멜로 영화다. 16세기 말의 러브 스토리가 현대에서도 여전히 금과옥조처럼 변함없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 노력은 50년 전이나 현재나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은 늙은 연인들의 재결합은 시간을 초월한 사랑의 위대한 힘을 느끼게 한다. '줄리엣의 비서'들이 수많은 사연들에 답장을 보내고 벽돌 틈에 50년 넘게 가슴 아픈 편지가 숨겨져 있었다는 설정 또한 흥미롭다.
영화의 외견은 소피와 클레어 찰리가 로렌조를 찾아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것이지만 줄거리는 소피가 클레어 할머니에 자극받아 새로운 사랑을 찾는 것이다. 클레어와 로렌조는 50년 전 이루지 못한 사랑을 맺는다. 그러나 소피는 여전히 빅토에게 사로잡혀 있다. 볼 때 마다 끔찍이 사랑한다며 '인그레더블'을 외치는 빅터. 그러나 마음 한 구석은 여전히 도넛의 구멍처럼 허전하다.
찰리와 소피는 함께 여행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티격태격한다. 그러나 여행이 끝나갈 때쯤 둘은 묘한 감정이 싹 터 버린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둘은 가문과 이름까지 모든 것을 버린 로미오와 줄리엣의 용기를 잊어버린 것이다.
클레어는 손자 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 참 답답하구나. 사랑을 얘기할 때 늦었다는 말은 결코 있을 수 없단다. 너도 나처럼 소피를 찾으러 50년이나 기다려서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릴거냐?"
영화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들이 인용되고 발코니에서 사랑의 고백이 이뤄지는 등 셰익스피어의 흔적들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된 베로나를 비롯해 시에나 등 이탈리아의 아름다움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볼거리도 풍성하다.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에서도 소피라는 이름으로 나왔던 사이프리드의 풋풋하면서도 당찬 매력이 돋보이고 바네사 레드그레이브도 늙어도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50년 묵은 사랑의 깊은 감정이 영화 속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소피와 찰리의 사랑 또한 테이크아웃 커피처럼 표피적으로 엮어낸 것이 아쉽지만 진정한 사랑에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는 젊은 관객에게 잘 전달될 듯싶다.
감독 게리 위닉(49)은 2002년 '올챙이'란 작품으로 선댄스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독립영화 출신이다. 소피와 찰리, 클레어와 로렌조를 통해 시간을 초월한 사랑의 위대함을 교훈으로 얻지만 요리에 빠져 사랑을 놓친 빅토에게서는 뭘 얻을 수 있을까. 그것은 사랑에는 조금의 틈도 줘서는 안된다는 것, 방심은 금물이다. 권태가 문틈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대문 열고 나가버린다.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05분.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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