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 다짐하게 되는 잘 죽는 연극 '춤추는 할머니'

입력 2010-10-02 07:3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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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노년문화연구소 극…"신청하면 찾아갑니다"

'춤추는 할머니' 연극 연습 장면

"니 덕에 지난 20년이 안 외로웠다. 니 몸 잘 건사하거래이."

"어무이, 무신 말씀하시는교.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지예."

"너거들 우야든동 서로 보듬어주고 사이좋게 지내거라. 너거들 맘에 맺히고 얽힌 거 이 애미가 다 갖고 가마."

죽음을 앞둔 구순 할머니와 가족들의 정겨운 대화가 눈물겹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할머니는 의연하다. 가족들에게 만원씩 나눠주며 그들의 고민, 걱정을 모두 사간다. 진정 아름다운 마무리가 아닐 수 없다.

이 장면은 연극 '춤추는 할머니'에서 구순 생일을 맞은 주인공 할머니가 죽음을 준비하는 장면이다. 세 아들과 딸, 며느리들이 할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 연극은 아름다운 중노년문화연구소에서 창립 7주년을 기념해 준비한 웰 다잉(Well dying) 연극 '춤추는 할머니'(원작 장두이)다. 90세 생일을 맞은 할머니 생일잔치에서 가족들은 그동안 쌓여왔던 감정들이 폭발하며 갈등이 고조되지만 할머니는 가족들의 아픔을 하나하나 어루만져주고 춤을 추며 죽음을 준비한다는 내용이다.

배우들은 40대에서 70대까지 평범한 중·노년들. 연극은커녕 무대에도 한 번 서본 적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무대다. 사투리로 주고 받는 대사는 자신의 삶에서 퍼올린 언어들이다.

이들이 처음 만난 것은 지난 3월. 웰 다잉 교육과정을 이수한 사람들이 모여 '춤추는 할머니' 시나리오를 읽어내려갔다.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임을 공감한 이들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대중적으로 전하기 위해 연극을 하기로 했다.

이들이 저마다 죽음에 대한 생각, 살아온 경험을 나누면서 시나리오는 점차 풍부해졌다. 원작은 간단하지만 마당극 형식으로 새롭게 각색하고 아리랑에 맞춰 한층 흥겨워졌다.

이들은 창단공연을 앞두고 한창 연습 중이다. 연극단 이름도 해가 넘어간다는 의미에서 '해너미'라고 지었다.

죽음에 대해 이미 공부한 이들이지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선뜻 하기엔 쉽지 않았다. 주인공 할머니 역을 맡은 김영숙(78) 씨는 "내가 연극 속에서 죽는 역이니까 처음엔 안맡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인공 김 씨는 추석 때도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열성적으로 임했다. 수없이 죽는 장면을 연습했다. "이 연극을 통해 죽음에 대한 마음의 무장을 새롭게 했죠. 동년배 사람들에게 얼마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웰다잉 과정을 배우고 죽음에 대해 공부한다고 하니 주변의 반응은 하나같이 부정적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죽는데 골치아프게 공부는 왜 하느냐?', '그 돈으로 국밥이나 사먹지, 왜 돈 주고 죽는 걸 공부하냐', '왜 나를 그런 곳에 끌고 가려고 하느냐'는 등의 비난 일색이었다.

하지만 연극 출연진들은 죽음에 대한 공부는 필수라고 강조한다. 배영근(62) 씨는 "중학교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너무나 무서워 혼자 숨어서 울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그 때 누군가 나에게 죽음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해줬다면 그처럼 무섭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곳에서 '잘 죽을 것'이란 말은 축복과도 같은 말이다. 출연진들은 밝은 얼굴로 서로 '잘 죽을거야'라고 농담섞인 말을 건넨다. '잘 죽는다'는 말은 '잘 산다'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위해 무료로 팔을 걷어 부친 연출가 이현순(도도연극과교육연구소) 씨에게도 이번 공연은 특별하다. "대부분 지원금을 받기 위해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처럼 순수한 목적으로 모인 동아리는 처음"이라면서 "오랫동안 연극 교육을 해오면서 슬럼프에 빠져 있었는데 이번 연극을 하면서 개인적으로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첫 창단 공연은 6일 오전 10시, 11월 17일 오후 1시 달서구 노인종합복지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그 밖에도 원하는 복지시설이나 종교단체 등 자신들의 연극을 원하는 곳에 찾아다니며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 구순의 할머니는 아리랑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준비된 죽음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여기 오신 손님네들 아픈 곳 아린 곳 내 갖고 가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자식들아 사이좋게 살아라 다음 세상에 꼭 만나자꾸나"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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