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인물] 일본 대도시 불태운 커티스 러메이

입력 2010-10-01 10:15:33

일본의 무조건 항복은 1945년 3월부터 8월까지 도쿄 등 66개 대도시에 대한 미국의 전략폭격으로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원자폭탄은 그 마지막 방점을 찍은 것이었다. 이 폭격으로 워싱턴DC의 3배 면적인 178 평방 마일이 황폐화됐고 일본 군수산업은 끝장이 났다. 이 같은 전과 중 원자폭탄이 기여(?)한 것은 3.5%에 불과했다. 이를 지휘한 이가 '무쇠 엉덩이'란 별명의 커티스 러메이(1906~1990)였다. 그는 낮은 폭격 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고고도 폭격에서 저고도 폭격 방식으로 바꿨다. 폭탄도 목재 건물이 대종인 일본 건물의 특성을 겨냥, 네이팜탄으로 교체했다.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태워버린 것이다. 880℃의 불지옥 속에 33만 명이 타죽었고 46만 명이 불구가 됐으며 전쟁의지는 꺽여버렸다.

공군참모총장으로 있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는 쿠바 핵공격을 포함한 전면전을, 은퇴 후에는 폭격으로 북베트남을 '석기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매우 호전적이고 보수적인 인물이었다. 존슨 행정부와 불화로 사직한 뒤 1968년 대통령 선거에 인종주의자 조지 윌리스가 이끄는 미국 독립당의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1990년 오늘 사망했다.

정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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