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리(贓吏:뇌물을 받은 관리)의 자손을 어떤 이는 등용해야 한다고 하고, 어떤 이는 등용해서는 안 된다고 하니 마땅히 일정한 법을 세워야 되겠는데, 등용한다면 어떤 벼슬을 주어야 하는가." 세종대왕은 고민에 빠졌다. 도승지 안승선은 "그렇게 되면 탐욕한 자들이 앞으로 거리낌이 없이 행동할 것이니 등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충신 김종서는 "마땅히 등용해야 한다"고 했다. 요즘 같으면 국민투표에 부쳐야 할 사안이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나름대로 해답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명재상 황희(黃喜)와 맹사성(孟思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문제를 정리해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옛사람은 '덕을 따라 행실을 고친다' 하였습니다. 사람을 쓸 때 집안이나 친속의 일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오래된 관습입니다. 비록 장리의 자손일지라도 진실로 현능(賢能)하다면 써야 할 것입니다." 세종대왕의 파격 인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내일부터 김황식 국무총리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김태호 내정자가 사퇴 의사를 밝힌 지 꼭 한 달 만에 또 다른 인물의 국무총리 후보자 검증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비록 민주주의 역사는 짧지만 국민을 속이고는 어떤 권좌에도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또 국민의 목소리가 얼마나 준엄한지를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이틀간 김 후보자에 대한 온갖 문제들이 파헤쳐 질 것이다. 당연히 파헤쳐져야 한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지도자의 도덕성과 능력을 검증하지 않을 수는 없다. 문제는 인사 검증이 정략적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4세기 영국의 사상가 오컴은 공리공담을 일삼은 학자들이 난무하던 중세 스콜라철학시대에 대해 "어떤 일을 설명할 때는 최소한의 필연적인 것 외에는 아무것도 끌어들이지 말라"고 경고했다. 각종 이론과 주장에 대해 면도칼로 베듯 주변을 정리하고, 핵심만 심플하게 내세우자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비판의 여지는 많지만 복잡한 실타래를 해결할 때 흔히 인용되는 '오컴의 면도날'이다.
지도자가 훌륭한 도덕성과 인간성, 거기에다 출중한 정치적 능력을 갖췄다면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이런 인물은 성경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비천한 인물을 두둔하자는 것은 아니다. 어떤 면도날로 그 사람을 재단(裁斷)할 것인가. 그 경계선을 우리는 찾아야 한다.
윤주태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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