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도 못하는 '라이브 서저리' 개인병원서 매년 개최
지난달 28일 대구 수성한미병원에서 특별한 모임이 열렸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정형외과 전문의 7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라이브 서저리'(Live Surgery), 즉 수술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행사가 펼쳐진 것. 관절분야 라이브 서저리는 서울지역의 극히 일부 대학병원에서만 가끔 열릴 뿐 지역 대학병원에서도 열지 못했다. 그런 의미있는 행사가 지역 개인병원에서 서울대 의대 이명철 교수, 계명대 의대 손승원 교수, 차의과대 김재화 교수, 충북대 의대 박경진 교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대학병원도 못하는 '라이브 서저리' 매년 개최
이날도 정형외과 전문의 7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관절경을 통한 무릎 반월판연골봉합술, 십자인대재건술 등 까다로운 수술이 5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라이브 서저리가 처음이 아니라 올해로 벌써 6회째를 맞는다는 것.
행사를 주최한 한미병원 이영국(48) 원장은 '연구하는 의사'를 모토로 삼고 있다. 환자를 접하며 새로 습득한 수술기법도 기꺼이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적잖은 비용 부담을 감수해가며 개원 이후 매년 라이브 서저리를 개최하고 있다.
처음 의과대학에 진학할 때만 해도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의사를 꿈꿨다. "딱히 어떤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저 개원해서 환자 많이 보는 의사가 될 줄로만 알았죠." 솔직한 말이다. 지금껏 살아온 이야기를 듣노라면 그의 삶은 '우연 속의 필연'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당초 성형외과를 희망했지만 고가의 사진기며 기자재를 구입할 돈이 없어서 정형외과를 택했다.
레지던트 4년차 시절, 관절을 절개하는 대신 작은 구멍을 뚫어 수술하는 관절경을 우연찮게 처음 접했다. 포항 해병대에 있는 포항병원 군의관으로 근무할 때, 관절경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이 곧잘 들어왔지만 장비가 없어서 수술을 할 수 없었다. 수소문 끝에 시내 병원에 관절경 장비가 있다는 말을 듣고 환자를 데리고 그 곳까지 가서 수술을 지켜봤다. 기존 수술법대로 할 수도 있었지만 호기심과 보다 나은 치료를 해주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고단한 길을 택했다. 이런 선택은 이후 그의 삶을 크게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복무를 마칠 무렵 부대측 배려로 석달간 서울 대형병원에서 관절경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주중에 병원 인근 고시원에서 먹고 자며 새로운 시술을 배우고, 주말이면 부대에 내려왔습니다. 고단한 생활이었지만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기쁨이 워낙 컸습니다. 당시만 해도 관절경 수술을 하는 의사는 지역에서 한 손에 꼽을 정도였죠." 관절경 수술의 대가로 거듭나는 디딤돌이 된 시기였다.
◆환자를 믿고, 자신을 믿어
당초 의과대학 교수로 남고 싶었던 그는 자리가 날 때까지 대구시내 한 병원에서 봉직의로 근무하며 경력을 쌓았다. 마침 그 병원이 수련병원이 된 덕분에 레지던트 후배들도 들어왔다. 5년간 근무하며 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SCI급 논문을 포함해 학술지에 15편 이상 실렸다. 박사학위도 땄다. 교수로 갈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친 셈이었다. 하지만 역시 우연찮게 그는 교수 자리를 포기하고 만다.
'우연찮다'는 표현으로 뭉뚱그리기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결국 '새옹지마'가 된 셈이었다. 더 이상 월급받는 의사로 기다릴 필요가 없었던 그는 자신의 병원을 만들어보겠다고 결심한다. 대구 성서 한복판에 건물을 지어올릴 때만 해도 주위 사람들은 만류했다. 이면도로 뒷편이어서 접근성이 나쁘다는 이유였다. "마침 토지공사에서 분양하던 땅이 외환위기 탓에 절반으로 값이 떨어졌어요. 기회라고 여겼죠. 아파트 사려고 모아두었던 돈에다 가족들 도움을 받고, 적잖은 돈까지 융자를 내서 결국 건물을 지었습니다."
결국 2002년 1월 '이영국 정형외과'를 개원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무모하다 싶은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믿었고, 환자를 믿었다. 매일 서너명 이상 수술환자가 밀려들었다. 봉직의 시절에도 환자가 2, 3개월씩 밀렸다. 실력에 자신이 있었기에 환자가 찾아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처음 개원할 때만 해도 1층과 7층만 의원으로 사용했지만 3년 만에 7층 병원 건물을 통째로 쓰면서 '한미병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올해 3월 '수성한미병원'을 개원하며 모두 의사 10명, 직원 120명이 근무하는 두 병원을 운영하게 됐다.
◆사회환원도 보다 확대할 터
"돈을 제법 벌었느냐?"는 물음에 "아직 빚도 다 갚지 못했다"고 웃어보였다. 돈 욕심 때문이 아니라 환자 편의 때문에 수성구에 병원을 열었다고 했다. "성서에 있는 한미병원에 수성구를 비롯해 청도, 영천 등지에서 오는 환자가 상당수입니다. 보다 쉽게 우리 병원을 찾도록 하고 싶었죠." 게다가 새로운 장비를 보면 구입하지 못해 안달이 난다. '라이브 서저리'를 할 수 있는 방송장비도 병원 문을 열면서 바로 구입했다. 대학병원 교수들조차 한미병원이 갖추고 있는 장비를 보면 혀를 내두르며 부러워할 정도다.
하지만 장비는 부수적인 도구일 뿐이다. 정작 환자들이 찾는 이유는 믿음 때문이다. "기존 무릎 관절조직을 제거하고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치료합니다. 연골이나 인대도 최대한 제기능을 되찾아주는 쪽으로 수술을 합니다."
무릎 연골판 중 뒷쪽 부착부가 찢어진 경우 MRI로도 쉽게 찾아낼 수 없다. 장딴지가 당기는 통증을 호소하지만 원인을 찾지 못해 엉뚱한 치료를 하는 경우도 곧잘 생긴다. 실제로 한미병원에는 다른 곳에서 치료나 수술을 받은 뒤에도 호전되지 않아 찾아오는 환자가 많다. 이런 후방 연골판 수술은 무려 500례에 이른다. 전국에서 가장 많다. 또 후방 십자인대 파열시 두 가닥으로 이어주는 수술을 하는 의사는 그리 많지 않다. 연골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 보다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미세천공술은 그가 대구에서 처음 도입했다.
지난 4월부터 줄기세포를 인체에서 뽑아 관절부위에 주사한 뒤 빠른 치유와 재생을 돕는 '줄기세포 치료법'도 지역에서 최초로 도입했다. 지금까지 50례 이상 시술했다. 올해 말쯤이면 실제 무릎조직에 얼마나 큰 효과가 있는지 발표할 수 있을 전망이다.
발뒷꿈치 뼈가 부서졌을 때 뼈조직뿐 아니라 관절도 보다 완벽하게 복원하는 새로운 수술법을 소개해서 2006년 제79차 일본정형외과학회에서 '올해의 논문상'을 받기도 했다. 아울러 자신이 직접 개발한 의료기술관련 국제 특허도 2건이나 갖고 있다.
저소득층 주민들에 대한 의료봉사와 건강 및 요양보험료 지원도 꾸준히 하고 있다. "결국 함께 사는 게 중요하겠죠. 특히 소외계층은 작은 관심에도 크게 기뻐합니다. 경제적 여유만 더 생긴다면 '사회 환원'을 보다 확대할 생각입니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