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구지하철 참사 벌써 잊었나

입력 2010-09-25 07:27:30

대구지하철 1호선에 비치된 방독면이 모두 내구연한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호선도 82%가 내구연한을 지난 것으로 조사됐다. 게다가 화재 발생 시 안전 필수 장비인 방독면 개수도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하철에 화재가 발생한다면 승객들이 유독 가스 중독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방방재청이 한나라당 유정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화재에 대비해 전국 각 지하철역 승강장에 비치하는 방독면 개수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없었다. 또 비치된 방독면 대부분이 내구연한을 초과해 승객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지난 2003년 대형 참사가 발생한 대구지하철 1호선의 경우 30개 역에 비치된 5천700여 개의 방독면 모두가 내구연한 5년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지하철 2호선 26개역에 비치된 3천50여 개의 방독면도 82%가 내구연한을 넘긴 것으로 집계됐다.

소방방재청의 '화생방 업무 추진 지침'은 국민방독면의 화재용 정화통은 유효기간(5년)이 지나면 폐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하철 역사의 방독면 비치 개수에 대해선 명확한 기준이 없다고 한다.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이후 2004년 행정안전부가 지하철 역사별로 긴급 비치한 방독면 203개(승강장 200개, 역무실 3개)가 기준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소실돼 대구지하철 역사의 방독면 비치 개수는 평균 150여 개로 집계됐다.

지하철 역사의 방독면 비치 장소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열차 내에 비치하지 않고 지하철역 승강장 및 대합실 인근, 역사 진출입 계단 입구 등에 산재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화재가 발생했을 때 활용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관련 기관은 방독면 비치 기준을 조속히 마련하는 한편 지하철 화재에 대비한 제도와 정책을 서둘러 보완해야 할 것이다.

이번 추석 연휴 때 수도권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서울 지하철이 물에 잠긴 것처럼 재난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이후 이웃 일본이 이 사고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한 이유는 자국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지하철 화재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백서를 발간하고 안전테마파크를 설립했다고 해서 지하철 화재 사고를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고 예방의 첩경은 유비무환을 실천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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