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시간 비행기로 날아와 대구서 탈장수술한 온두라스 나홈 이삭 씨

입력 2010-09-20 10:25:19

"여러분 덕에 고통 벗어나" 눈시울

온두라스인 나훔 이삭(오른쪽) 씨가 구병원에서 탈장 수술을 받은 뒤 입원실에서 회복을 기다리고 있다. 왼쪽부터 미국 한인교회 김바울 목사, 구병원 구자일 병원장.
온두라스인 나훔 이삭(오른쪽) 씨가 구병원에서 탈장 수술을 받은 뒤 입원실에서 회복을 기다리고 있다. 왼쪽부터 미국 한인교회 김바울 목사, 구병원 구자일 병원장.

지구 반대쪽 온두라스 엔뜨라다 지역에 살고 있는 나훔 이삭(Nahon Isaac·30) 씨는 11년째 탈장으로 고통받아왔다. 아랫배에 있는 장 일부가 사타구니 틈새로 삐져나오는 탈장은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질환.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걷거나 뛰는 일조차 쉽게 할 수 없었다. 고통을 이기기 위해 나름대로 만든 압박 팬티를 입고 11년을 견뎌왔다. 그가 40여 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낯선 도시 대구에서 수술을 받았다.

17일 낮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그는 곧바로 대구 구병원에 도착, 수술을 받았다.

구병원 구자일 병원장이 직접 집도를 했고,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11년간 그를 괴롭힌 질병과 작별을 고할 수 있었던 것은 비록 얼굴조차 모르지만 '서로 돕고 위하자'는 여러 사람의 마음이 한데 모였기에 가능했다.

처음 이삭 씨의 사연을 접한 이는 미국 메릴랜드주 솔즈베리 에벤에셀 한인교회 김바울 목사였다. 그는 온두라스에 파송된 한인교회 강다윗 선교사를 통해 소식을 들었다. 마침 김 목사의 친척이 대구에 살고 있었고, 구병원의 오현아 내과 과장과 소식이 닿았다. 사연을 접한 병원 측은 기꺼이 수술비와 입원비를 부담하기로 약속했다.

김바울 목사는 "온두라스에서 탈장 수술을 받으려면 2천700달러 정도가 필요한데, 이삭 씨가 사는 동네 사람들은 운이 좋아야 하루 2달러 정도를 버는 수준"이라며 "처음 미국에서 수술받도록 시도했으나 비자 문제와 수술비가 무려 1천500만~2천만 원이 필요해 포기했다"고 말했다.

수술비는 쉽게 해결됐지만 한국까지 오는 것도 문제였다. 온두라스에서 코스타리카와 파나마를 거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도착한 뒤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한국에 올 수 있었다. 40여 시간이 걸린 머나먼 길이었다. 항공료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이삭 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미국 시카고 한인교회 측에서 부담했다.

이삭 씨와 함께 통역 봉사를 자원한 서울과 대전의 청년 3명도 함께 대구로 왔다. 이들은 한국해외봉사단 활동을 계기로 페루와 인연이 닿아있었는데, 페루의 한 교민이 연락을 해 "온두라스에서 이삭이라는 사람이 대구에 수술을 받으러 가니, 스페인어 통역을 도와주면 좋겠다"고 알려왔다. 이들은 이삭 씨가 수술 받던 날 입원실 한쪽에서 쪼그려 잠을 청하며, 수술과 치료에 필요한 통역을 맡아주었다.

수술 후 통증 때문에 쉽게 말을 잇지 못하는 이삭 씨는 "여러 분들의 도움으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구병원 구자일 병원장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 사람들의 도움이 이삭 씨의 생명을 구했다"며 "한가위를 맞아 이런 좋은 일에 구병원이 함께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김바울 목사는 "이삭 씨가 결혼 후에도 아기를 갖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다"며 "회복 후 비뇨기과 검진을 통해 다른 방법이 없는지 찾아볼 계획"이라고 했다. 이삭 씨는 30일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글·사진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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