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어릴 때 추억과 가족이 기다리는 귀향의 설렘이 있어 더 즐겁다. 그래서 팍팍했던 지난 1년의 삶을 잠시 잊고, 가는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기꺼이 수고로움을 받아들인다. 그 수고로움 뒤에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만남이 기다린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추석을 잘 나타내는 말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를 바란다'(加也勿 減也勿 但願長似嘉俳日)가 있다. 조선 후기 김매순이 지은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에 나온다. 추석에는 가난한 집도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반찬을 하거나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차렸다. 끼니조차 제대로 없는 살림이지만 이날만큼은 짐짓 여유를 부렸으니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1년 매매일이 한가위와 같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똑같았을 것이다.
이맘때면 TV는 귀향길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교통 정보와 함께 선물 꾸러미에 아이들 손을 잡고 함박웃음을 짓는 단란한 가족을 보여주는 것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추석이 모두에게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갈 고향이 없거나 텅 빈 주머니뿐인 처지 때문에 귀향을 못하는 이들에게는 더 괴롭고 쓸쓸한 날일 뿐이다.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천상병이 1970년에 지은 소릉조(小陵調)다. 추일(秋日)이라는 부제로 보아 아마 추석이 다가올 무렵에 지었을 것이다. 가난한 시인은 차비가 없어 부모님 산소는 물론, 형과 누이를 만나러 가지도 못했다. 막걸리 한 잔에 시 한 수로 씁쓸함을 달랠 뿐이다. 40년 전의 시(詩)에 숨이 콱 막히고, 가슴이 얼얼한 것은 이 모습이 요즘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차비가 없어 귀향을 못하는 이는 없겠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귀향을 못하거나, 하더라도 꼭 반갑지만은 않은 이도 많을 터이다.
모레면 추석이다. 이날만큼은 모두에게 그저 즐겁기만 했던 어릴 적 추석이면 좋겠다. 차례를 마치기 바쁘게 맛있는 제물에 손이 먼저 올라가다가 꾸중을 듣던 일을 떠올리며 함께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부실한 삽짝이 부모님의 조바심으로 다 닳기 전에 고향으로 돌아가자.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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