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 세계화와 민족주의

입력 2010-09-20 07:31:57

물류중심지 될 韓日 해저터널 감정적 반대보다 득실 계산을

세계화는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전 세계가 하나처럼 살자는 것이고 민족주의는 우리 민족끼리 잘살자는 말이다. 한 국가에서 쓰는 말이지만 개념은 서로 배치된다. 민족주의를 강조하면 세계화를 할 수 없고, 세계화를 강조하면 민족주의의 의미가 희석된다.

우리에게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일본은 지리상으로 매우 가깝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를 침략한 나라인 일본의 진정성에 의심이 많다. 대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 유학을 가장 가고 싶은 나라는 미국과 일본이다. 전자는 민족주의의 답이고, 후자는 세계주의의 대답이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는 일본 자본을 유치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다. 지방 발전의 가장 빠른 길은 해외직접투자(FDI)이다.

공업단지에 일본인 투자단이 오면 10년간 소득세를 면제해 주고, 우리나라 기업인보다 더 우선으로 특혜를 제공하고 있다.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한국과 일본이 비자를 면제해주고 있다. 하네다 공항과 김포공항은 국제공항급이 아니지만 한국 국적 항공기와 일본 국적기는 이용토록 하고 있다. 해마다 대학생 100명을 정부 장학금으로 교환하고 있다. 제주도는 일본인 관광객에게 내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도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일 간에 이러한 조치들은 국경의 개념을 희석시키는 일이다. 국가는 국경을 넘는데 입국사증을 받으라 하고, 물건에는 관세를 내라 한다. 국가 간에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잘 살면 된다. 민족주의자 눈으로 보면 편치 못하다. 일본 만화, 일본 소설이 판을 치고 일본 상품이 시장을 점유하면 우리의 것은 무엇이고 국산품을 어쩌란 말이냐 하는 소리다. 세계화는 상품의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질이 좋고 값이 싸면 된다.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으뜸이다. 우리의 상품이 일본에 뒤지는 것도 있지만 앞서는 것도 있다. 개방하면 경쟁력도 생기고, 겨룰 만한 양질의 국산품도 많이 있다 한다.

유학생들에게도 국가를 따지지 않는다. 좋은 학교이고 잘 배우면 된다. 꼭 민족대학이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영토의 개념도 그렇다. 기업하는 사람에게 굳이 한국 땅에 공장을 세우라 할 수 없다. 수지가 맞으면 중국, 일본, 미국 어디든 땅을 사서 공장을 짓는다. 카드의 결제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가능하다.

우리는 독도를 우리 땅이라 하고 일본은 일본 땅이라 한다. 울릉도에 공장 짓겠다고 하면 허용하고, 독도에 일본인 가공 공장을 짓겠다고 한다면 허용하지 않을 것 같다. 우리가 우리 땅이라고 강하게 주장할수록 일본은 더욱더 일본 영토라고 우긴다. 세계 영토 분쟁이 있는 국가 간에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여 전쟁도 하고 실랑이를 해 보았지만 그렇게 해서 자기 영토가 된 곳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 전쟁으로 사람만 많이 죽었다. 모순이다. 우리나라 땅은 일본인 땅처럼 사용하라고 내놓는 것이 세계화이고 한 치의 땅도 양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 민족주의이다.

한'일 해저터널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터널이 완공되면 일본의 거대한 제품 물량이 한반도를 통해 이동할 때, 한반도는 화물과 금융의 중심지가 된다. 북한을 거치고 중국, 러시아를 통하여 런던에 이른다. 신실크로드가 될 것이라 한다. 독도 문제에 대해 억지 주장을 하고 있는 마당에 일본과 해저터널이 연결된다면 우리나라는 일본의 영토나 마찬가지가 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민족의 정체성을 문제로 삼는다. 일본의 '경제적 침략'으로 부산항의 기능은 몰락할 것이라 한다. 일제 강점기 때 1941년에 설계하고 착공했다가 중단한 그 터널이다. 일본의 경제적 지배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우리는 무역으로 먹고살고 있는 나라이다. 문을 닫고 살 수는 없다. 1970년대 매판 자본을 받아들인 한국은 얼마 있지 않아 남미 대부분의 국가와 같이 미국의 종속국가가 되어 가난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한국은 문 닫고 사는 나라보다는 형편이 낫다. 2009년 지역발전위원회는 한'일, 한'중의 2개 해저 터널을 검토 과제로 하여 '경제적, 기술적인 타당성 연구'를 포함해 2020년까지 국토개발기본구상을 했다. 일본의 식민지 때, 관부터널의 악몽은 있다.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개방하지 않고 경쟁이 없으면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해저터널은 220㎞, 추정해서 100조원이 필요하다. 한국 측이 감당해야할 예산은 20% 정도이다. 20년은 걸릴 것이라 한다. 진지하게 검토해 볼 만한 토목공사이다.

박찬석 전 경북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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