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휴가 다 못쓰는 여성이 태반인데…"

입력 2010-09-18 07:45:30

출산장려 정책…대기업·정규직 직원 유리한 정책

정현정 대구여성노동자회 팀장
정현정 대구여성노동자회 팀장
이미원 여성정책센터 수석연구원
이미원 여성정책센터 수석연구원
셋째 아이 출산한 공무원 임언미
셋째 아이 출산한 공무원 임언미

정부가 최근 발표한 2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일부 공무원, 전문직 여성이 아닌 대다수의 여성들은 이 계획안을 접하고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를 보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정책 사각지대 여성에 대한 배려 부족"-정현정 대구여성노동자회 팀장

"아직 출산휴가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태반입니다. 비정규직 여성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네요."

대구여성노동자회 정현정 실업빈곤팀장은 이번 계획안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구여성노동자회로 상담을 요청하는 여성 노동자의 90%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에 관한 상담을 한다. 주로 중·소규모 업체에 근무하는 이들은 출산 후 3개월 주어지는 휴가를 쓰지 못해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여성이 많다. 임신은 곧 퇴사를 의미하는 직장이 아직도 많다. 육아휴직은 말할 것도 없다.

이번 대책안에는 육아 직장인의 근로시간 단축 청구권,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는 대상 영유아의 나이도 만 6세에서 만 8세로 확대 등의 방안을 내놓았지만, 정작 여성인력을 보충할 대체인력에 대한 방안이 없다. 또 맞벌이 부부에 대책이 집중돼 영세자영업자, 비정규직, 전업주부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지적이다.

"작은 회사에는 출산 휴가 기간인 3개월 동안 대체인력을 구하기도 쉽지가 않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업무가 집중되기 때문에 눈치가 보여서 출산을 앞두고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경력 단절이 이뤄지고, 아이를 키운 후 다시 직장을 구하면 단순 업무가 대부분이고 임금은 저하되지요. 이런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정 팀장은 "돈 얼마 더 주는 것이 저출산 문제 해결에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방문교사 등의 여성들은 이마저도 받을 수 없다.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여성이 의외로 많다는 것.

4살, 7살 두 아이를 둔 정 씨 역시 아이를 키우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늘어나는 사교육비를 생각하면 당장 돈을 얼마 준다고 아이를 낳을 생각은 전혀 없다.

"이번 계획안을 보고 허탈감에 빠질 여성들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형평성에 문제가 많습니다."

◆"프랑스식 부모 노동권에 초점을 맞춰야"-이미원 여성정책센터 수석연구원

"우리가 독일과 프랑스의 사례를 잘 분석해서 생각해봐야 해요. 이번 대책은 '일주일치 기름값 줄테니 자동차를 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네요."

이미원 대구여성가족정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은 2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의 방향을 두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계획은 주로 육아휴직 급여 인상, 보육료와 양육비 부담 경감, 내년부터 태어나는 둘째 자녀 고교 수업료 면제 등 대부분 자녀 양육권의 보호에 집중됐다. 독일과 프랑스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파격적인 지원을 했다. 그 결과 프랑스의 출산율은 높아지기 시작했지만 독일은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프랑스는 정책의 중심을 부모의 노동권에 둔 반면 독일은 자녀 양육권에 지원을 집중한 것. 이번 저출산 대책은 독일형에 가깝다는 평가다.

"근본적으로 부모가 일할 수 없으면 독일의 경우처럼 실패할 확률이 높아요. 우리나라는 자녀양육권에 대한 배려가 워낙 적었던 만큼 보육과 경제활동에 대한 정책이 병행돼야 합니다."

이 연구원은 노동권 보호를 위해 세심한 배려를 하지 않으면 선심성 행정에 그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일자리를 만들고 기업 내 양성평등, 가정에서의 평등이 자녀 양육권과 병행돼야 아이를 더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저출산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에 대한 의지가 부족한 것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파격적으로 늘어난 예산 만큼이나 효율성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정책 연구자들 대부분이 독일과 프랑스 사례를 알고 있지만 '노동권 보호'라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독일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럽도 이제 출산정책의 방향을 전환하고 있는 만큼 우리 역시 이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보육료 등 지원 늘었지만 현실 미치지 못해"-셋째 아이 출산한 공무원 임언미

"공무원이라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월 100만원을 준다 해도 휴직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최근 셋째를 출산한 공무원 임언미(36) 씨는 이번 정책을 꼼꼼히 살펴봤지만 과연 무엇이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장 파격적인 정책 가운데 하나인 육아휴직 급여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첫째와 둘째의 보육료만 해도 월 100만원은 될 겁니다. 물가가 올라 기본 생활비도 많고, 갓난 아기에게 들어가는 비용까지 생각하면 100만원 받고 집에 있을 수는 없죠."

게다가 월 100만원의 육아휴직 급여를 받기 위해선 기본급이 월 250만원이 돼야 하는데, 가임여성 가운데 이 정도 급여를 받는 가임여성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월100만원'도 생색내기용 숫자라는 것.

임 씨는 육아휴직을 선택할 수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경력 단절'을 꼽았다. 또 대체근무인력도 구하기 힘들다는 것. '첫째 아이를 출산하는 교사' 정도만이 육아휴직을 마음놓고 사용할 수 있지 않겠냐고 꼬집었다.

임 씨의 경우 출산 비용에만 적잖은 돈이 들어갔다. 산전 검사 비용을 비롯, 제왕절개 수술 비용 100여만원, 산후조리원 비용 200여만원이 소요됐다. 여기에다 출산 준비물, 출산 후 예방접종 비용 100여만원까지 더하면 출산 전후 2년간 드는 비용은 500만~600만원은 족히 된다. 현재 출산지원정책에는 이런 비용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많은 여성들에게 저출산 극복 실효성에 대해 비판받는 이유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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