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먼 자립의 길…운영 해법 없나
대구시 중구 동인동에 있는 대구여성회에 들어서면 향긋한 비누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대구여성회 사무실 한쪽에 마련된 사회적기업 자작나눔센터에서 천연비누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13일 오후 자작나눔센터를 찾았을 때도 비누 만들기가 한창이었다. 깔대기를 이용해 완성된 물비누를 플라스틱 용기에 담는 사람, 비누를 포장하는 사람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육정미 자작나눔센터 대표는 "추석을 앞두고 선물용 주문이 많이 들어와 평소보다 일손이 바빠졌다"고 했다. 16㎡(5평) 남짓한 자작나눔센터를 둘러보니 하트, 장미 등 각양각색의 천연비누들이 진열돼 있었다. 비누 모양을 잡는데 필요한 틀과 각종 재료 등을 담은 통도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어 누가 봐도 비누 만드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대구여성회 자작나눔센터는 지난 5월 사회적기업으로 인증을 받았다. 이곳에서 일하는 10명의 여성들 가운데 8명은 취약계층이다. 자작나눔센터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물비누, 숙성비누, 손세정제, 천연방향제 등 30여 가지. 모두 밤껍질·어성초·녹차·뽕잎 등 천연소재를 이용해 만든다. 지금은 대구한의대 한방생명자원연구소와 함께 여성전용비누를 개발 중이다. 자작나눔센터는 비누 제조·판매뿐 아니라 무료 체험교육과 환경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이달 초에는 미혼모 시설인 혜림원에서 천연비누 만들기 교육을 실시했다.
사회적기업이 주목받고 있다. 사회적기업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기업과 달리 취약계층에 대한 일자리 창출과 사회 서비스 제공을 주목적으로 한다. 창출된 이윤을 사회에 재투자하기 때문에 '착한 기업'으로 불린다. 고용노동부에 의해 실업극복 방안의 하나로 사회적기업 제도가 도입된 이후 점차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기업의 긍정적 역할에 비해 전망은 밝지 않다. 대부분의 사회적기업이 영세하다 보니 자립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갈 길 먼 사회적기업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으면 3년 동안 경영컨설팅 제공, 인건비 지원 등의 혜택을 받는다. 인증을 받은 뒤 3년이 지나면 자립을 해야 한다. 각종 혜택이 3년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지원이 중단된 뒤 사회적기업이 버티지 못하고 파산하면 3년 동안 국민의 세금으로 투자한 비용이 허사가 되고 사회적 일자리 창출과 사회 서비스 제공이라는 목표도 물거품이 된다. 따라서 자활 여부는 사회적기업의 성공을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다. 하지만 사회적기업 운영자들은 3년 안에 자립 기반을 마련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가내수공업 형태를 탈피하지 못한 사회적기업이 많은 점을 감안하면 3년 이후 자립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
자작나눔센터의 경우 판로 개척에 애를 먹고 있다. 지명도가 낮아 선뜻 천연비누를 구매하겠다는 업체나 소비자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 대구여성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비누를 판매하다 보니 판매량이 많지 않아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인건비를 지원받기 때문에 현재 기업은 유지하고 있지만 앞날은 불투명하다. 수익이 발생하지 않아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 서비스 확대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기업 운영자들은 사회적기업이 자활하기 위해서는 사회적기업·관·민 3박자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현재는 부조화가 연출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육정미 자작나눔센터 대표는 "시민단체나 복지단체 등에서 사회적기업을 많이 운영하고 있다. 시민·복지단체를 운영하는 것과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주먹구구식 운영이 아니라 기업가적 마인드를 가져야 하는 이유다. 대구시도 예산만 지원해 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회적기업 인큐베이터 역할을 확실히 해야 한다. 제품 홍보를 도와주고 대형마트 등이 사회적기업 제품을 우선 구매할 수 있도록 판로 개척을 도와주는 등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 시민들은 발품을 팔아서라도 사회적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찾아 구매하는 착한 소비를 해야 사회적기업이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려 사회가 한층 더 건강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경북의 사회적기업
대구경북에는 지난 7월 말 기준 31개의 사회적기업이 있다. 대구에는 대구오페라페스티벌오케스트라·대구YWCA 간병단·서구웰푸드·대구경북지역먹거리연대·사회복지법인베네스트 일하는세상·대구여성회 자작나눔센터·대구위드·대구다운회·낙동강환경운동본부 환경개선사업단·대구YMCA 신천에스파스사업단·대구수성시니어클럽 행복한고물상·화진테크화진택시·대구YMCA 희망자전거제작소·대구수성시니어클럽 햇빛촌 콩나물사업단·대구여성노동자회 부설사업단 손길·대구미디어교육연구소 등 16개가 있다
경북에는 포항YWCA 육아전문지원센터·전통문화진흥회·참사랑보호작업장·유은복지재단 나눔공동체·참살이·백두리싸이클링·행복한일터·제일산업·늘품테크·가경복지센터·사회복지법인 성요셉직업재활센터·다문화통번역센터·칠곡여성인력개발센터·신라문화원·경북미래문화재단 등 15개 사회적기업이 활동 중이다.
사회적기업은 외형상 성장하고 있다. 2009년 대구의 사회적기업 매출은 2008년에 비해 1.5배 증가했다. 또 전체 유급 근로자 가운데 취약계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70%를 넘어 사회 기여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자활 여력을 가진 곳은 많지 않다고 한다. '지원이 중단 된 뒤 대구경북 사회적기업 가운데 몇 개나 자활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는 사람이 많다. 사회적기업 지원업무를 담당하는 한 공무원은 "현재 수익을 내며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는 사회적기업은 소수에 불과하다. 지금 추세라면 자활에 성공할 수 있는 비율이 50%도 안 될 것 같다. 사회적기업을 연착륙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고 설명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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