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하는 도시 번성하는 도시](10)日 교토의 기모노 산업

입력 2010-09-17 07:33:02

"수천만원짜리 누가 사겠어요?" 현실 앞엔 전통부활 노력도 허사

교토 니시진(西陣) 직물회관에서 매일 열리고 있는 기모노 패션쇼.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기모노 모델이 되려면 혼자 입기 불가능하다는 기모노를 능숙하게 입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교토 니시진(西陣) 직물회관에서 매일 열리고 있는 기모노 패션쇼.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기모노 모델이 되려면 혼자 입기 불가능하다는 기모노를 능숙하게 입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1천년의 기모노 역사를 자랑하는 교토에는 아직도 전통적인 수공 방식으로 원단을 만드는 곳이 남아있다. 장인 2명이 함께 직기를 조작해 천을 짜고 있다.
1천년의 기모노 역사를 자랑하는 교토에는 아직도 전통적인 수공 방식으로 원단을 만드는 곳이 남아있다. 장인 2명이 함께 직기를 조작해 천을 짜고 있다.
교토에는 기모노를 빌려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여성들이 흔하게 눈에 띈다.
교토에는 기모노를 빌려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여성들이 흔하게 눈에 띈다.

교토(京都)는 매력적인 도시다. 즐비하게 늘어선 전통 가옥과 목조 가게, 정취가 묻어나는 명승고적지, 고아하고 은근한 도시 분위기…. 일본다운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전통의상인 기모노를 입은 채 대로를 지나다니는 여성들이 아닐까. 다른 도시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다. 각선미가 드러나는 기모노를 입고 아장아장 걸어가는 여성들의 모습에서 교토의 과거와 현재를 보게 된다.

◆일본 여성들의 열정

기모노는 우리와도 인연이 적지않다. 30, 40년 전 한국 주부들은 가계에 한푼이라도 보태기 위해 원단을 가져와 기모노 옷감으로 만드는 소위 '홀치기'를 하곤 했다. 그 '홀치기' 제품은 일본으로 건너가 여성들에게 입혀졌다.

일본 여성들이 기모노에 보이는 열정은 대단하다. 미혼 여성들이 돈을 모아 교토에 놀러오는 가장 큰 이유는 기모노를 입어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값이 비싸고 결혼식 때나 입어볼 수 있는 예복이기에 싼 가격에 빌려입고 고도(古都)를 활보하는 것이 관례처럼 돼있다. 일본 여성들은 평생 한 번 입기 힘든 기모노를 실컷 즐기며 추억을 남기려는 것이다. 외국 관광객들이 교토에서 눈요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기모노를 두고 신체를 전부 가린다는 점에서 '감춤의 미학'이라고 하고, 화려하고 휘황찬란한 색감과 문양 때문에 '걸어다니는 미술관'이라고 한다. 일본인들의 기모노에 대한 자부심은 그만큼 대단하다.

그렇다면 기모노 산업은 어떤 상태일까. 일본 전통섬유산업의 중심지는 교토다. 과거 1천200년간 일왕이 살았던 수도였던 만큼 비싸고 호화로운 의상의 메카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에도 교토 지역은 일본 전체 전통섬유산업 매출액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취재진이 교토를 찾은 이유는 과거 영화를 잃어버린 대구의 섬유산업에 자극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일본은 1970년대 이후 섬유산업이 몰락하면서 기모노와 개량 제품 등으로 고부가가치형 전통섬유산업에 치중해 성공을 거둔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지에서 확인해 보니 일본도 한때 반짝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고 한다. 1980년대 전통섬유산업으로 다소 호황을 누렸지만 1990년대 들어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급격하게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이카리야마 도시미츠(碇山俊光) 교토 니시진(西陣)직물협동조합 전무는 "업체들이 경영개선, 기술개발 정보 교환, 장인 교육 등에 나서고 있어 제2의 부흥기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업체들과 장인들의 노력은 눈물겹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은 듯했다.

◆옛 영화를 잃어버린 기모노 산업

교토의 니시진 직물 회관에 가면 기모노의 제작 공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두어 시간을 살펴보고 장인(匠人)들에게 설명을 들어봐도 공정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고 너무 복잡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기모노 1벌을 만드는데 무려 11단계의 공정을 거쳐야 했다. 디자인을 하고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부터 풀을 먹이고, 염색후 증기로 찌고, 금분(金粉)으로 가공하고, 자수를 놓고 다시 고치고 마지막 정리까지…. 장인들의 정성이 깃들어 있다고 찬사를 보내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기껏 옷 한벌 만드는 데 이렇게 미련할 정도로 지난한 과정을 수행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렇듯 많은 장인의 손을 거치고 분업을 하다 보니 제작기간이 오래 걸리고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수천만원부터 1억원이 넘는 고가이다 보니 웬만한 사람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밑그림을 그리는 장인 가마다 후미오(鎌田文雄·63) 씨는 "10여 년 전에 비해 수입이 3분의 1정도로 줄어 생활이 어렵다"며 "기모노 산업이 바닥을 기고 있으니 이제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예전부터 중국, 한국 등에서 수입한 견직물(비단)을 많이 써왔지만 요즘은 제작 공정을 몇 단계 생략하거나 혼자서 전 제작공정을 수행한 제품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제품 단가를 낮추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기모노 산업의 매출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전통섬유산업의 기반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있었다.

금가공(金加工) 장인 오자키 다케시(尾岐武司·71) 씨는 "생활패턴이 변화하면서 기모노 가격이 싸든 비싸든 간에 수요가 거의 없다"면서 "이러다간 전통적인 기모노 제작기술이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장인들은 후계자를 키워 기술을 전수할 수 없는 점이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다니무라 다모츠(谷村保· 65) 씨는 "전통 장인 중에 젊은 사람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먹고살기 힘든데 누가 이 기술을 배우려 하겠는가"라고 했다.

교토시는 2000년대 들어 '전통산업 활성화 추진 조례' 및 '전통산업의 날' 제정, '후계자 육성사업' 지원, '기술공로자 표창' 등 각종 지원책을 내놓았지만 뚜렷한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교토시 상공부장 호리이케 마사히코(堀池雅彦·51) 는 "교토의 전통섬유산업이 위기를 맞은 지는 꽤 오래됐다"며 "교토시 총생산액의 1.6% 정도에 그칠 정도로 비중이 작아졌다"고 했다. 시 당국은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소비자가 외면하는 상황에서는 '백약이 무효'라는 시각을 갖고 있는 듯했다. 전적으로 시대의 흐름 때문에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닐 것이다. 소비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하는 전근대적 생산방식과 서비스 부재도 또 다른 원인이었을 것이다. 대구와 교토, 둘 다 섬유산업의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지만 뚜렷한 실마리를 찾아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교토에서 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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