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중독 200만명 시대
32살때 동료들과 재미삼아 시작한 포커판에서 '타짜'(노름판에서 남을 잘 속이는 재주를 가진 사람)라 자부했던 박모(49) 씨는 17년간 10억원의 재산을 날린 뒤 도박을 끊겠다며 스스로 '단(斷)도박'에 나섰다.
보험업을 했던 박 씨는 "내가 최고, 심지어 타짜라고 생각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가 '타짜'라고 자부하게 된 것은 언제든 잃은 돈을 회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박 씨는 점점 더 큰 판을 찾아다녔다. 박 씨에게 도박은 확률 게임이며 머리가 좋은 사람은 절대 잃을 일이 없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그는 하루 2천만~3천만원을 손에 쥘 때도 있었다. 반면 5천만원씩 잃기도 했다. 도박 문제로 집이 날아가 아내와 이혼한 뒤에도 그는 도박판을 찾아 다녔다.
결국 선친이 남긴 집 등 10억원을 잃고서야 박 씨는 '중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금방 만회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진정한 착각이었다"고 뒤늦은 후회를 했다.
11~18일은 정부가 정한 도박중독 추방 주간으로 17일은 '도박중독추방의 날'이다. 지난해 정부가 사행성 도박 행위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도박중독추방의 날을 선포한 것이다.
방송인 신정환 씨가 도박 빚으로 해외에 억류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도박 중독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도박중독은 연예인에 한정된 게 아니라 우리 사회 깊숙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국무총리 소속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는 이달 9일 도박중독추방 주간을 맞아 만 20세 이상 성인 1천 명을 대상으로 국내 사행산업 이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도박중독 유병률이 6.1%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도박중독 유병률은 '특정 집단에서 도박중독자가 차지하는 비율에 대한 추정치'로 조사결과에 따르면 성인 200만 명이 도박 중독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50만 명(1.7%)은 치명적인 중독 위험에 노출돼 있어 당장 치료가 필요한 사람으로 분류됐다.
사감위 통계에 따르면 도박중독자의 가족이나 지인들이 상담 치료를 의뢰하는 경우가 2008년 727건에서 지난해 1천548건으로 급증했고, 올 상반기에도 1천262건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대구가톨릭대 정신과학연구소 권복순 소장은 "도박중독자들의 경우 충동적인 면과 경쟁적인 면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인정받고 싶어하는 심리, 스트레스 대처능력 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며 "도박중독자 치료의 만병통치약은 상담치료를 병행한 신뢰성 회복, 특히 가족간 대화"라고 강조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도 도박중독 문제 해결을 위해 '중독예방치유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서울, 경기, 부산 등 전국 3곳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가족의 역할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목소리다. 도박의 늪에서 벗어나려는 자조 모임인 단도박 모임도 가족 모임을 활성화하고 있다.
모임 관계자들은 "도박중독자의 경우 도박중독을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 가족들을 속이는 경우가 적잖다"며 "진실을 털어놓고 가족을 신뢰하는 게 근본적 해결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도박중독 상담치료 의뢰 건수(자료=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2008년 727
2009년 1,548
2010년 상반기 1,262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