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병역 시비 해답, 상소문에 있다

입력 2010-09-13 10:57:44

군복무를 '18개월로 줄이자' '24개월로 다시 늘리자'는 논란이 젊은 층 사이에서 시끌시끌하다. 강군(强軍)이 되려면 숙련된 병사를 필요한 수만큼 유지해야 한다는 정부의 논리와, 가급적이면 군역(軍役)의 부담을 줄이고 싶어하는 백성 쪽의 인지상정은 맞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런 상반된 마찰은 왕조시대에도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 전 순무(巡撫)어사 김성일(金誠一)이 올린 상소에는 당시 백성들이 과도한 세금과 무거운 병역을 피해 달아나 고을마다 열 집에 아홉 집이 빈집이 되는 실태를 이렇게 보고했다.

'군적(軍籍)은 헛명부로 돼있고 한 집에서 장정 10명의 역을 맡아야 하니 어찌 군사나 백성이 도망가 떠돌아다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무릇 우리나라는 땅이 좁고 인구가 번성하지 못하여 군사 수요에 비해 백성이 적으므로 겨우 젖이 떨어지기 무섭게 군적에 올려지고 병역을 정할 때는 5, 6세부터 성인이 된 양 작성합니다. 국법에 60세가 넘으면 군역을 면제하는데도 뇌물을 안 바치면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도 노제(老除=노인의 병역면제)를 않아 흰머리 털과 마른 명태 같은 등허리로 화살을 짊어진 채 눈물을 머금고 소리를 삼키면서 죽기를 기다리는 자가 얼마인지 알 수 없습니다. 엎드려 청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법을 맑게 하시어 이들의 병역을 면제케 하소서!'

임진왜란을 겪은 200여 년 뒤에도 애절양(哀絶陽)이란 노래가 나왔다. 애절양이란, 글자 그대로 양물(陽物=생식기)을 스스로 끊어버린 사연을 슬퍼한다는 뜻으로, 가난하고 고달픈 삶의 근본 원인이 사내아이를 많이 낳아 병역세(군포)와 세금을 많이 무는 탓이라며 남편이 자신의 심벌을 끊자 아내가 그 슬픔을 노래한 내용이다.

'시아버지 3년 상 끝난 지 오래고 갓난아이 아직 배냇물에 젖어 있건만 3대(代) 이름이 다 군적에 실리니(중략)… 호소해 보려도 관문지기가 호랑이 같아 애달프기만 하다. 애 낳은 게 죄인가. 이 환난을 당했고녀….'

통치자의 병역 관리가 어린애를 어른으로 쳐서 베를 징수하고 노인은 노제를 않은 채 계속 세금을 매기는 식으로 원칙 없이 무겁기만 하면 백성의 삶이 고달파짐을 말하고 있다. 병역 기간 연장 반대론에 무게가 실린 상소다.

반대로 군역을 받듦으로써 국방을 든든히 한 일본을 본받자는 상소도 있었다. 병역 강화 쪽의 상소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으다 왜군에 잡혀갔던 형조(刑曹) 좌랑 강항(姜沆)이 일본 땅에서 몰래 보내온 상소다.

'왜병이 강한 까닭은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자에게는 반드시 나라가 토지로써 상을 주고 전사한 자에게는 '사내 대장부야'라고 명예롭게 치받들어 전사자의 남은 아들을 서로 사위를 삼으려고 합니다. 어쩌다 전쟁이 나면 고을 장군에게 직속된 장정들이 떼를 지어 모여들어 어디서나 병사들이 모자라지 않습니다. 따라서 농민들은 논밭에만 매달려 군량을 마련해낼 여유가 있습니다. 이는 비록 섬나라 왜놈들의 제도라 하더라도 언제나 군율과 훈련이 잘 짜이고 전쟁의 공이 그 마을에 돌아오니 그런 결과를 낳게 됩니다. 우리나라 형편을 살피건대 임란이 나자 고관대작 자녀는 다 빠지고 가르친 바 없는 농민들만 긁어모아 싸움터로 몰아세우고 그것도 아침에는 순찰사 부하가 됐다가 저녁 나절엔 도원수를 따라야 하는 등 장(將)과 졸(卒)이 아침저녁 뒤바뀌며 갈팡질팡 갈피를 못 잡는데 제갈량, 유비, 악비 같은 명장이 다시 살아온다 한들 어찌 36계 도망질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400~500여 년이 지난 오늘 아직도 우리는 병역 기피, 군 기강 해이 등 완벽한 국방이 굳혀져 있지 않다. 오히려 왜적도 아닌 동족의 총구 앞에서 병역 기한 논란으로 젊은이들끼리 갈라서서 인터넷 시비나 하고 있다. 대통령과 국방부 수뇌들의 의견부터도 엇갈린다. 24개월과 18개월의 정답은 무엇일까. 단지 복무 기간만이 문제이고 다른 정신적 관점은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임진왜란 앞뒤에 나온 두 시대의 상소문에서 우리는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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