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쏘시스템 다섯 외국 남자 '좌충우돌 대구 정착기'

입력 2010-09-11 08:03:22

다국적기업 다쏘시스템 직원들 "대구 이래서 Good, 이것만은 고쳐줘요

대구에 진출한 다쏘시스템 R&D센터 소장을 포함한 직원 5명이 사무실 내에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아리엘 모란디, 브라이언 인, 크리스토프 시브, 크리스토프 르카피텐, 프랑소아 자비에 씨)
대구에 진출한 다쏘시스템 R&D센터 소장을 포함한 직원 5명이 사무실 내에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아리엘 모란디, 브라이언 인, 크리스토프 시브, 크리스토프 르카피텐, 프랑소아 자비에 씨)

"덜 맵게요." "메뉴판에 그림도 없어요." "외국인도 아이폰을 할부로 싸게 구입하게 해 줘요." "너무 더워요."

프랑스에 본사를 두고 세계 28개국에 124개 지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기업 다쏘시스템(Dassault Systems)의 다섯 외국 남자가 대구에 정착해 좌충우돌 살아가고 있다. 대한민국에 그것도 서울이 아닌 대구에 발령이 난다는 걸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낯선 땅, 대구로 오게 된 이들이 100일 안팎 지내면서 겪은 여러 가지 일들과 느낌에 대해 들어봤다.

이들은 만난 건 이달 6일 오후 3시 30분 계명대 대명동 캠퍼스 내 도서관 건물에 있는 다쏘시스템의 회의실과 휴게실.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서 17명의 한국인과 외국인 직원들이 일하고 있었다. 인터뷰 대상은 순수 프랑스인 3명과 베트남계 프랑스인 1명, 중국계 미국인 1명. 이들은 지난 5월 다쏘시스템이 대구에 R&D센터를 열면서 대구로 오게 됐다. '한국말은 거의 못하고, 영어로 일부 소통하는 이들에게 비친 대구는 어땠을까?'라는 궁금증을 갖고 이들의 얘기를 주의깊게 들어봤다.

★아리엘 모란디(Ariel Morandy), "아이폰 할부 좀"

다쏘시스템 대구 R&D센터의 책임자인 아리엘 모란디(46) 소장은 먼저 불편한 부분부터 얘기했다. 업무용으로 꼭 필요한 아이폰을 할부로 싸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한국 통신회사에서 취업비자를 받고 입국한 외국인에게도 배려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안정적이고 믿을 수 있는 직장을 가진 이들에게 발급하는 'D8' 비자를 가지고 있는데도 2년 약정을 담보할 수 없어 내국인과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대구에 정착하면서 확실하게 배운 단어는 2개. "덜 맵게"와 "직진". 모란디 소장은 처음 식당에 가서 무작정 음식을 시켰다가 매운 맛에 혹사당한 뒤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 안중곤 사무관에게 "덜 맵게"라는 말을 확실하게 배웠다. 발음도 꽤나 정확했다. 워낙 맵고 짠 음식이 많아 메뉴를 주문하면서 자동으로 이 말을 외친다. 그는 "대구에서 내년에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다고 하는데 식당 메뉴판에 영어 표기나 그림 표시가 나와 있으면 좋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택시를 타면 유일하게 아는 단어 "직진"을 활용한다. 그는 비슷한 곳에 왔다고 생각되면 이 단어를 몇 번 이용해 목적지와 가장 가까운 곳에 내려 걸어가기도 한다. 대구의 택시 기사들 중에 영어를 할 수 있는 기사들이 많지 않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하지만 대구의 대중교통은 프랑스 파리 못지 않게 잘 발달돼 있어서 이용하기 좋다고 했다.

★크리스토프 시브(Christophe Siv), "뭐라 카노?"

어머니는 베트남계, 아버지는 캄보디아계인 프랑스인 크리스토프 시브(25) 씨는 가장 준비된 상태에서 대구에 왔는데도 의사소통을 비롯한 문화적인 적응에 큰 애로를 겪고 있었다. 시브는 2, 3개월 동안 한국어를 공부해 기본적인 말을 어느 정도 알고 왔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대구에 온 뒤 혼자서 가구를 사기 위해 시내의 가구점을 들렀는데 한국말이 아닌 또 다른 한국어를 접하고 깜짝 놀랐다. 가구점의 여주인이 사투리가 워낙 심해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을 뿐더러 "천천히 얘기해 달라"고 여러 번 얘기해도 말이 더 빨라져 결국 발길을 돌렸다는 것.

시브 씨는 결국 한국말을 잘 하는 다른 동료와 함께 가구점에 가서 대구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가구를 살 수 있었다. 그는 "처음 가구점 주인을 만난 이후 한국말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며 "대구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열심히 한국어를 배워서 어딜 가든 자신있게 의사소통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보다 대구가 좋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서울은 너무 인구가 많고 교통도 복잡해서 답답한 측면이 있는데, 대구는 깨끗하고 도로도 잘 뚫려 있어 생활하기에 딱 좋습니다."

★프랑소아 자비에(Prancois Xavier), "KTX 굿"

부인과 자녀가 서울에 있기 때문에 주말마다 KTX에 몸을 싣는 프랑소아 자비에(45) 씨는 KTX 특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고속열차인 KTX가 프랑스 떼제베(TGV)에서 기술을 들여왔기 때문에 익숙한 데다 특실은 조용하고 여러 가지 업무도 볼 수 있어 그에게는 아주 고마운 존재였던 것. 그의 자녀는 일곱 살과 아홉 살로 지금은 서울에 있는 프랑스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대구의 국제학교로 전학을 고려중이다.

평소 트레킹을 즐기는 자비에 씨는 대구의 팔공산과 앞산에 대해 극찬했다. "Marvelous Landscape(놀라운 경치)!" 그는 "주말이나 휴일에 가벼운 복장으로 앞산과 팔공산을 오르는 것이 큰 즐거움"이라며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산책하고 몸과 마음을 단련하기에 적합한 곳"이라고 했다.

대구에 수영장이 많지 않은 점은 불편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영을 워낙 좋아해 매일 수영할 수 있는 스포츠 콤플렉스를 찾았는데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며 "마침 주변의 도움을 얻어 좋은 곳을 찾았는데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앞으로 대구에서 2년 정도는 더 있어야 할 것 같다"며"익숙해지면 가족들과 함께 대구·경북의 좋은 관광지를 많이 방문하고, 한국의 전통 고장인 안동과 역사도시 경주도 놀러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브라이언 인(Brian Yin), "좌충우돌 즐겨요"

중국계 미국인인 브라이언 인(40) 씨는 무작정 오게 된 대구 생활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2주 전 아내와 자녀도 대구로 와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는 모든 게 새롭고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엉뚱한 일이 생겨도, 더 많이 웃고 "에피소드가 하나 더 생겼네"라며 잘 받아들인다. 두려움도 없다. "지난 3년 동안 마신 술보다 대구에 와서 3개월 동안 마신 술이 더 많아요." 인 씨는 "한국 사람들 특히 대구 사람들은 술을 마실 때 엄청 많이 마신다"며 "술잔만 들었다 하면 '원샷'을 외치는 독특한 분도 많이 만났다"고 웃었다.

도전정신과 자신감이 과도해 낭패를 본 적도 있다. 자신이 일행을 이끌고 팔공산 정상까지 올랐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아무리 물어봐도 먹을 것을 파는 곳이 없었다. 또 케이블카가 있다고 해 타고 내려오려 했는데 '보수 중'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그를 따른 일행들은 점심까지 굶어가며 오후 늦게 팔공산을 내려와야 했다.

그는 대구가 아직 국제도시로서 미흡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문제이고, 두 번째는 대구공항이 너무 작고, 이용객도 적어 국제공항으로서의 면모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는 "대구가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이후 세계인의 도시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프 르카피텐(Christophe Lecapitaine), "물가 싸서 좋아요"

크리스토프 르카피텐(40) 씨는 한국의 대구라는 곳으로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만 본사에서 해외로 진출하다 보니 '어떤 나라든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 정도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대구에 와 보니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가운데 재미도 있다며 좋아했다.

특히 물가가 서울이나 파리 등 대도시보다 싼 편이어서 경제적 부담이 적은데다 대구시와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 계명대 대명캠퍼스 등에서 잘 협조해 줘 생활에 큰 불편이 없다. 하지만 르카피텐 씨는 "대구의 여름은 너무 더워서 깜짝 놀랐다"며 "대구가 좋긴 하지만 아직은 사무실에 있는 게 마음이 편하고, 밖에 나갈 땐 한국인 직원들과 함께 다니는 게 여러 모로 편리하다"고 말했다.

르카피텐 씨의 자녀도 서울의 프랑스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대구 생활에 적응하면서 가족이 모두 옮겨오는 걸 적극 검토하고 있다. 그는 "대구는 내게 시간이 지나면서 더 살기 좋은 곳, 추억이 아롱아롱 생기는 곳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대구시민들이 더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피력했다. 그는"택시나 버스, 지하철 등을 탔을 때 곳곳에서 웃는 얼굴과 양보하는 마음이 피어난다면 더 많은 외국인들이 대구를 다시 찾을 것"이라는 조언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다쏘시스템='3D for All.' 3D를 통해 누구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시공간 제약 없이 표현하고 공유하며 경험할 수 있도록 솔루션을 개발·지원하는 글로벌 기업. 1981년에 설립돼 프랑스 벨리지에 본사를 두고 있다. 세계 28개국에 124개 지사를 두고 있으며 사원이 8천 명을 넘는다. 고객 수는 세계 80개국에 개인 또는 법인 11만5천 명. 지난해 매출액은 12억5천만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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