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를 역설했다. '공정한 사회'는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되,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는 사회라고 했다. 또 넘어진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일어선 사람은 다시 올라설 수 있는 사회, 서민과 약자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사회라고도 했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행보에 익숙하던 터라 무한 경쟁으로 질주하는 후기산업사회에서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보호하려는 의지의 표현쯤으로 생각한다면 가볍게 이해는 되지만 왠지 가슴은 허허롭다.
모든 정치지도자들은 자신의 정부가 정당하고 합법적이며 효율적이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납득시키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정부가 '공정한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지위가 공고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 지도자들의 이러한 속성은 시간과 공간을 관통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새삼스럽게 '공정한 사회'를 천명하면서 그것을 집권 후반기 국정의 어젠다(agenda)로 설정한 것에는 무엇인가 곡절이 있을 법하다.
"일류국가가 되려면 '공정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주장만 놓고 보면, 진정성을 넘어 철학적 격조마저 느껴진다. 실제 '공정한 사회'의 효력(?)은 정치권을 강타하며 권력과 부를 과점하고 있는 인사들을 전율하게 하고 있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후보들이 낙마한 것이나, 딸의 부정 특채 의혹 때문에 외교통상부 장관이 사퇴한 것은 모두가 '공정한 사회'의 후폭풍 때문이다. 효력의 크기만큼이나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여권은 공정한 경쟁구도의 정착을 조준하고 있는 반면에 야권은 자칫 '사정 정국'으로 비화될까 움찔하고 있다.
그렇기는 해도 여야는 물론 국민 모두가 '공정한 사회'의 총론에는 대체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판된 하버드대학 마이클 센델(Michael J. Sanel)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의 돌풍에서 보듯 우리 사회 모두가 느끼고 있는 도덕적 가치에 대한 진한 갈증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공정한 사회'로 향해가는 것을 '인민재판'이나 '길로틴'에 빗댄 여권 일각의 우려는 뭔가 구린 기득권 세력의 볼멘소리 정도로 들린다.
대다수 국민들은 '공정한 사회'에 가탁해서 고답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까지는 원하지 않는 듯하다. 단지 권력과 부를 이용해서 반칙과 불법을 자행하고도 국민을 향해서 그토록 당당할 수 있는 몰염치(沒廉恥)를 개탄할 뿐이다. 출발과 과정이 공정했기 때문에 모두가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사회, 우리가 원하는 사회는 이처럼 소박한 사회일 게다.
윤순갑 교수(경북대 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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