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요리하는 의사] 천사들의 방문

입력 2010-09-06 07:33:28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깡마르신 노수녀님, 시각장애인 할머니 그리고 백발의 단발머리 할머니 세 분이 호스피스 상담을 하러 오셨다. 누가 아픈 것일까? 80세쯤 되신 수녀님이 차근차근 설명을 하셨다. 상악동 암(얼굴 뺨 부위에 생기는 암)으로 투병 중인 이옥순(75) 할머니 이야기였다.

청각장애인 옥순 할머니는 시각장애인 선희 할머니와 '만찬의 집'에 살았다. 그들은 보육원 시절부터 서로의 눈과 귀가 돼 주었다. 중구 계산동에 위치한 '만찬의 집'은 가톨릭 신자들이 지어준 시각장애인을 위한 작은 보금자리이다.

그곳에서 옥순 할머니는 시각장애인에게 엄마 역할을 했다. 늘 맛있는 음식을 해주던 할머니에게 무서운 암이 찾아왔다. 한 대학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고 방사선치료를 했지만,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이제 누군가 옥순 할머니를 보살펴 줘야 했다. 하지만 '만찬의 집' 식구들은 그녀를 도와 줄 수 없었다. 할머니를 비교적 저렴하게 간병할 수 있는 평온관으로 입원할 수 있도록 도와드렸다.

옥순 할머니가 입원한 뒤 평온관에는 많은 문병객으로 활기찼다. 안마 봉사를 가는 수요일을 제외하고 선희 할머니를 포함한 '만찬의 집' 식구들이 병동에 매일 왔다. 옥순 할머니는 눈을 감고 계시다가 선희 할머니를 보면 반가워서 큰소리로 말씀도 나누시고 산책도 하셨다. 옥순 할머니가 잘 만드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더니 "이 언니 음식은 다 맛있어. 된장찌개, 물김치 못하는 게 없어" 하면서 선희 할머니는 자신의 특기인 안마를 해드렸다. 옥순 할머니의 소원은 만찬의 집에 한 번 가는 것이었다.

집을 떠난 지 3개월 만에 '만찬의 집'에 도착했을 때, 옥순 할머니의 모습을 평온관 팀은 잊을 수가 없었다. 장애인 식구들이 옥순 할머니를 둘러싸서 안마해주고, 안아주고, 어루만져 주었다. 그녀는 아픈 몸으로 우리에게 커피를 타 주려고 했다. 그렇게라도 잠깐 집에 다녀온 뒤부터 많이 편안해하시고 우리에게도 마음을 열었다.

오후 회진 무렵이면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50대 남자 분이 늘 문병을 왔다. 할머니는 20년 동안 치아가 불편한 그에게 음식을 다져주셨다. 문병객들마다 힘들었지만 아름다운 그녀의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옥순 할머니는 암에 걸린 천사였다.

선희 할머니는 안마봉사로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두 번이나 받으셨고, 지금도 수요일에는 집 근처 병원에 안마 봉사하러 간다. 뇌성마비의 50대 남자분과 자원봉사자로 보이는 여자 분은 부부라고 했다. 갑자기 옥순 할머니한테 오는 모든 분이 천사로 보이면서, 내 삶이 부끄러워졌다. 가끔씩 호스피스병동에는 장애인이 말기 암으로 입원을 한다. 살면서 죽음보다 더 힘든 상황을 이미 경험해서일까? 그들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지막 단계인 '수용의 단계'로 누구보다도 편안하게 들어가는 것을 관찰할 수가 있다. 평온관팀은 옥순 할머니가 떠난 뒤 그녀를 그리워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만찬의 집을 방문하고 있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