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자들의 슬픔' 자살… "떠난 아들 흔적 밤마다 꿈틀"

입력 2010-09-04 08:08:33

'자살 방조하는 사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가 자살에 무감각해지고 있다. 유명 인사의 자살이나 극단적인 사연을 담고 있는 죽음이 아니면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유명 인사의 자살이라고 해도 동기나 과정 등 죽은 자의 개인사에만 초점을 맞추었다가 관련된 소재가 떨어지면 고개를 돌린다. 사회와 가족의 중요한 구성원을, 존엄성을 갖춘 한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간 우리 사회에 책임을 묻는 경우는 드물다.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욱 각박하다. 자살이라는 최악의 선택으로 인해 가장을 잃고, 소중한 가족을 잃고, 친구와 동료를 잃은 채 살아가는 이들의 고통은 사회의 누구도 분담하려 하지 않는다.

취재 결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슬픔은 당초 예상했던 최악의 상황보다 더 나빴다.

"눈물샘이 말랐어요. 그런데도 가슴 속에는 울고 있는 내 모습이 보여요. 울어도 울어도 그 사람이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눈물 흘리는 일밖에 할 수 없는 내가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천형(天刑)도 이런 천형은 없을 것이다.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런 고통을 생각했다면 과연 삶을 포기했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 정도로 그들은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자살은 바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저지르는 최악의 범죄다.

◆"아빠, 내 몸이 이상해요"

가족 중에 누군가 자살을 선택했다면 남은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연예인 최진실·최진영 남매가 모두 자살이란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어머니와 두 아이에 대한 걱정이 네티즌들에게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고(故) 최진실의 자녀 환희·준희가 지난 5월 "엄마, 삼촌 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는 사실 하나로도 사람들의 가슴은 뭉클해졌다.

보통 가정이 받는 충격 역시 이보다 결코 작지 않았다. 대구에서 회사를 다니던 아버지가 2년 전 회사 기계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대학생 딸은 아직도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40㎏대이던 몸매는 80㎏이 넘는 거구로 변해 버렸다.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폭식증으로 몸이 불어나 친척들조차 '이게 누구인가' 싶을 정도로 완전하게 다른 사람이 됐다.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자살로 아내를 잃은 한 회사원은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다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택했다. 우연히 알게 된 한 여성이 신장을 기증받지 않으면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고 하자, 선뜻 신장을 주기로 했다. 그는 "아내를 꿈에서 만나 여러 번 물어봤는데 신장을 줘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며 "죽은 아내를 기리며 평생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자취하던 여대생 딸이 성폭행을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자, 아버지는 술로 슬픔을 이기려다 화병을 이기지 못하고 심장마비로 죽은 일도 있었다.

◆"동생이 떠난 공허감을 술로 메워요"

동생이 사업 실패로 자살한 뒤 형은 온몸이 만신창이가 됐다. 매일 이어지는 폭음만이 그가 슬픔을 달래는 유일한 방법이다. 아침상부터 김치를 안주 삼아 소주잔을 기울인다. 자살한 동생의 기억을 떼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다. 그럴수록 동생과의 추억이 더욱 가슴속으로 파고드니 다시 술을 먹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다.

사랑하는 동생을 잃은 그는 지금까지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던 모든 세계를 산산이 부서뜨리고, 스스로를 슬픔과 혼란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지금으로선 동생의 죽음 이전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어려워 보인다. 동생의 죽음에 자신의 잘못도 있다는 생각에 죄책감마저 가슴을 아리게 한다.

동생의 아내는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아이를 데리고 재가를 했다. 홀로 남겨진 형은 살점이 떨어지는 듯한 상실의 고통을 떨치기 위해 더욱더 술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형은 동생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 처참하고도 슬펐던 기억의 끈을 놓으려 한다. 아직은 눈에 밟히듯 기억이 가까이 맴돌지만, 자식 묻는 심정으로 가슴에 동생의 무덤을 만들고 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두 아들 모두 보내고 우예 사노?"

어머니는 둘째 아들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시리다. 14년 전 첫째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은 지 반년도 안 돼 스물아홉 살의 둘째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세상에서 큰아들을 밀어낸 것은 낯선 사람의 차였지만 둘째 아들은 자신이 죽음을 택했다. 둘째 아들은 '사랑하는 여자가 만나주지 않아 나는 떠난다'는 짤막한 유서를 남겼다.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마신 잔에는 농약이 들어 있었다. 그 잔을 마신 둘째 아들이 안방에 쓰러져 있는 것을 고인이 된 아버지가 발견했다. 남편과 아들 둘을 모두 잃은 어머니는 둘째가 목숨을 끊은 집을 혼자 지키고 있다. 5년 전 집을 허물고 새로 지었지만 부모보다 먼저 떠난 둘째 아들의 흔적이 밤마다 살아난다. 꿈 속에서 아들을 수백 번, 수천 번 만난다. 하지만 꿈에서 깨면 다시 지옥이다. 아들은 곁에 없다. 남겨진 자가 짊어져야 할 슬픔이란 이런 것이다.

"먼저 떠난 큰아이보다 둘째 아들이 더 마음에 걸려요. 어미를 이리 남겨두고 혼자 떠난 아들이 원망스럽고 또 가엾지요, 뭐!" 가족이 한 명도 남지 않은 이 어머니는 어떤 희망을 갖고 살아가야 할까.

◆"영감이랑 함께 세상을 떠났어야 했는데…."

경북의 한 할머니는 갑작스런 할아버지의 죽음에 망연자실했다. 명절 저녁에 잠깐 나갔다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가더니 옥상에서 목을 매 운명을 달리한 것이다. 뒷집 할머니가 빨리 오라고 소리를 질러 달려가 보니 할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나 있었다.

할머니는 "한 달 전부터 남편이 '아이들에게 더 이상 짐이 되지 말자. 함께 목숨을 끊자'고 말해왔다"며 "그럴 때마다 '난 죽기 싫다'고 받아쳤는데 이런 일이 생기고 보니 허망하다"고 말했다.

사건을 조사한 경찰은 할아버지가 사전에 옥상에 있는 물통에 줄을 감아두고 줄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등 모든 준비를 해 두었다가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명절을 자살 시기로 정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장례식 후 할머니와 자식들은 그때의 충격으로 고향집을 버렸다. 할머니는 타 지역의 아파트에 홀로 살며 시골의 친구들도 만나지 않는다. 자식들도 시골집으로는 발걸음을 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현재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형편이라 도우미의 도움을 받고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때 영감과 같이 세상을 떠났어야 했는데…."

합천·김도형기자 kdh0226@msnet.co.kr 울진·박승혁기자 psh@msnet.co.kr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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