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선택' 하루 40명…아픈마음 돌봐 줄 '생명운동' 급하다

입력 2010-09-04 07:04:40

인터넷서 조 맞추고… 화풀이 하듯 동반비극 사회가 깊은炳 든 증거

'자살도 현실 도피며 무책임한 범죄다.'

대한민국이 이토록 살기 싫은 나라가 된 것인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로 2, 3위 국가인 일본과 헝가리를 멀찌감치 따돌릴 정도로 해가 갈수록 자살자가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를 살펴보면 지난해 1만4천579명이 자살해 하루 평균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6분에 1명씩 자살 사망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자살을 시도해 본 사람의 숫자는 자살 사망자의 무려 10배로 추정된다고 한다.

인생의 바닥으로 내몰린 사람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게 아니다. 전직 대통령, 대법원장 및 부장판사, 국회의원, 시장 등 고위 공직자를 비롯한 재벌 총수나 가족, 대기업 임원, 펀드 매니저, 교수, 교사 등 직업과 계층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강지원 변호사는 최근의 자살 급증에 대해 "비상사태라도 선포해야 한다"며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를 거치는 동안 세계 최고의 자살 증가율을 보이고 있는데, 생명을 잃은 안타까움뿐 아니라 경제력 손실도 엄청나다"고 경고했다.

◆'범죄다! 이럴 수는 없다'-한국에선 이런 자살도

'모여서 죽고, 자식 먼저 죽인 다음 죽고, 청소년이 투신하고…'

지난달 31일 낮 12시쯤 봉화군 춘양면 한 야산에서 20대 남자 4명과 여자 1명 등 5명이 승합차 안에서 연탄 화독 2개에 연탄 4장을 피워놓고 자살을 기도했다. 다행히 일찍 발견돼 생명을 건졌으나 2명은 위독한 상태다. 강원도에서는 지난해 단 2주 동안에만 4건의 동반자살 사건이 발생해 '강원도가 자살 성지냐'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의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인터넷 자살사이트에서 만난 남녀들이 자살 의지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함께 죽음을 결행하는 한국적인 인터넷 문화로 인한 자살 유형에 해당하는 사건들이다.

또 자녀를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고 '내 자식이니까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잘못된 사고방식은 가족 동반자살이라는 끔찍한 한국적 자살 유형을 만들었다. 가족미술치료 전문가인 경북대 보건복지학부 김효숙 외래교수는 "TV 아침 드라마에서조차 자폐 증세를 보이고 있는 아들의 손목을 밧줄로 묶은 뒤 연탄가스를 피워놓고 동반 자살을 기도하는 어머니가 나온다"며 "이런 자살 유형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하며, 죽어서도 용서받지 못할 자살이란 것을 사회가 알려줘야 한다"고 했다.

청소년 자살은 이미 위험 수위는 넘어섰다. 지난달 대구 도시철도 2호선 대곡역에선 여중생이 철로에 투신 자살을 기도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목숨은 구했지만 여중생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민주당 김춘진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한 초·중·고교생은 202명으로 2년 전 137명에 비해 47%나 증가했다고 한다. 이 중 초등학생도 6명이나 끼어 있다고 하니 우리나라에 자살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수도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의 수많은 다리들이 투신의 명소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각 다리별 투신자살 건수를 비교한 표까지 나올 정도이니 서울시민 1천만 명 가운데 진정 행복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될지 의문이 든다.

◆지역도 심각, 자살 담론도 다양

지역의 자살 수위도 서울에 비해 결코 낮지 않다. 인구 10만2천여 명인 영천시의 경우 연간 자살 사망자가 40~50명으로 추정돼 자살률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영천경찰서에 따르면 올해 7, 8월 두 달 동안 7명의 자살 사망자가 나왔다. 자살동기를 보면 빚 고민 2명, 사업 실패 2명, 취업 실패 1명, 가정 불화 1명, 건강 악화 1명 등이었다. 자살 형태는 목을 맨 경우 3명, 농약 음독 3명, 저수지 투신 1명 등이다.

울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9년 사이 자살 사망자가 2배 가까이 늘었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자가 2000년 124명에서 2008년에는 242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울산 내 전체 사망 원인 순위에서 2000년 7위였던 자살이 2008년에는 4위로 올랐다.

전국을 가리지 않고 자살 사망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보니 자살에 관한 담론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박형민(39)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1997년부터 2006년까지 발생한 자살사건의 수사기록에 나오는 유서 405건을 분석해 자살의 유형을 △회피형 △이해형 △해결형 △배려형 △비난형 △각인형 △고발형 △탄원형 등 8가지로 나누기도 했다. 이 연구는 자살자의 관점이 아니라 사회의 관점에서 자살의 소통지향성을 구체적으로 입증한 데 의의가 있다.

언론의 자살보도에 대한 책임공방도 있다.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남재일 교수는 최근 논문에서 "자살 사건이 발생 위주의 스트레이트 기사로만 취급되면서 주관적 사연은 배제되고 자살자는 사회관계 밖으로 내몰림으로써 자살 행위와 연루된 타인들의 관계 즉 사회적 책임은 사라진다"며 "이는 사회적 문제를 개인적 차원으로 전치시키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보편적인 수사학"이라고 주장했다.

산 마더스 병원 문석호 신경정신과 박사는 "도시인이 겪는 스트레스의 사회적 요인으로 황금만능주의의 팽배로 볼 수 있다"며 "산업화와 자본의 활발한 유입에 따라 경제성장 속도는 빨라지지만, 개인 내부에서 고통을 감당해 낼 수 있는 정신력은 약화하고 있으며 이것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음과마음 정신과의원 김성미 원장은 "자녀를 동반한 자살이나 인터넷 자살사이트를 통한 젊은이들의 집단 자살, 청소년들의 자살 등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자살 형태로, 완벽하게 감정에 지배돼 이성이 마비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며 "청소년들조차 투신하기 위해 아파트 베란다에 한번 쯤은 서 본 적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행복 바이러스가 퍼져야 할 자리에 자살 바이러스가 번져가고 있으니 사회가 더욱 불안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천·민병곤기자 minbg@msnet.co.kr 울산·하태일기자 godo@msnet.co.kr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