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함께] 삼성 라이온즈 마스코트 '블레오' 도전

입력 2010-09-04 07:56:00

댄스타임 막춤…관중들 "블레오가 제정신이 아니다"

'블루+밀림의 귀여운 사자 레오=블레오'

대구가 연고지인 삼성 라이온즈 프로야구단의 마스코트다. 바로 기자가 지난달 31일 자신을 버리고 도전한 일이다. 마스코트가 되는 순간 나는 이미 내가 아니다. 삼성 팬들과 야구장을 찾은 관중들을 즐겁게 해 줄 의무가 주어진 마스코트만 존재하는 것이다. 다행히 창피할 일은 없다. 머리에 커다란 사자 캐릭터를 쓰면 그나마 얼굴은 가려지니까. 하지만 마스코트의 생명은 관중들로 하여금 '안에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잊고 눈에 보이는 마스코트 자체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데 있다. 스스로 캐릭터에 몰입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폭염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었다. 올여름에는 푹푹 찌는 날씨로 인해 30분만 돌아다니고 나면 사우나를 한 꼴이 되기 일쑤였지만, 이날은 비도 간간이 내린 덕에 그리 덥지는 않았다. 기아와의 한판 승부가 펼쳐지기 2시간 전에 대구시민야구장에 도착하니 3년간 '블레오' 캐릭터 역할을 잘 소화해 온 중간급 베테랑 김현재(24) 씨가 기자를 돕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는 숫사자 역할을 맡았고, 암사자는 올해부터 이 역할을 해 온 이지용(19) 씨가 했다. 김 씨와 이 씨는 학교 선후배 사이로 비보이(B-boy) 출신이다. 이들과 본격적인 체험을 하기 전 '호흡을 잘 맞춰 보자'며 파이팅을 했다. 대기실을 함께 쓴 쭉쭉빵빵 치어리더 4명(노숙희·조정영·현지애·이경아)도 함께 파이팅을 외치며 기운을 듬뿍 불어넣어 줬다.

◆대구 팬들과 함께 해요, '찰칵 찰칵'

40여 분 동안 김현재 씨에게 블레오의 역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캐릭터로 변신을 끝낸 뒤, 첫 번째 임무를 수행했다. 야구장 매표소와 정문 입구에서 관중들을 맞는 일이다. 어떻게 보면 이 일이 가장 중요하다. 팬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하며 즐거움을 줘야 하기 때문. 하지만 시작부터 문제가 생겼다. 3㎏이 넘는 사자 머리를 쓰고 보니 시야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다. 캐릭터의 눈을 검게 보이도록 만든 검은 망 사이로 밖을 보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기자는 안경까지 쓰고 있는 터라 어려움이 더했다.

삼성 팬들의 안목은 예리했다. 금세 "블레오가 커졌다" "행동이 평소와 조금 다른데" 등의 이야기가 들렸다. 블레오 캐릭터의 키와 몸짓, 행동패턴까지 훤히 꿰고 있는 팬들이 갑자기 키가 훌쩍 커지고, 팬들을 대하는 동작까지 자연스럽지 못한 초보 블레오를 의심하는 건 당연했다.

50여 분 동안 정문 앞에서 블레오 역할을 해 보니 예상 외의 재미도 있었다. 톱스타 연예인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 서로 사진을 찍자고 난리였다. 특히 어린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악수 한번에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 기분에 오버페이스를 하기도 했다. 노숙자도 한번 끌어안아 주고, 여대생들이 단체로 오면 어깨동무를 하거나 가볍게 포옹하는 포즈도 취했다.

그런데 어쩌나. 대기실에서 물을 많이 마신 탓에 소변이 마렵고, 과도하게 움직이다 보니 안경이 비뚤어져 시야가 더 나빠졌다. 캐릭터를 벗고 화장실을 다녀오려면 10분 이상 걸리는데 팬들과의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는 노릇. 꾹 참고 마지막까지 임무를 수행했다. 시간이 되자 김 씨가 기자의 손을 잡고 "고생했다"며 대기실로 이끌었다. 캐릭터를 벗고 나니 날아갈 것 같았다. 온몸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다. 5분간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경기장 내 임무 수행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시타의 행운과 노래방 막춤

이날 시구는 올해 봉황기 대회에서 우승한 대구고 교장과 대붕기 대회에서 우승한 상원고 교장이 한다고 했다. 그래서 시타는 숫사자와 암사자가 동시 출격하게 됐다. 철망 뒤에서 대기하고 있다 시구자들이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암수 블레오도 홈 플레이트 쪽으로 향했다. 이날은 특별히 도깨비 방망이처럼 생긴 이상한 야구 배트가 주어졌다.

긴장이 됐지만 관중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조금 오버하기로 했다. 헛스윙을 하며 뒤로 나자빠지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머릿속에 그린 것. 하지만 비가 와서 넘어지면 옷을 빨기가 힘들다는 말에 헛스윙 하고 술 취한 것처럼 휘청거리는 포즈로 마무리했다.

경기가 시작되면 또다시 바빠진다. 삼성 선수가 득점을 올리면 홈플레이트로 달려나가 하이파이브를 하고, 홈런을 친 선수에게 사자 인형을 가져다주고, 공수교대 중 신나는 음악이 나올 때 그라운드로 나가 춤을 추거나 관중석으로 사은품을 쏘아보내는 등 스케줄이 꽉 짜여 있었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체험하기는 힘들어 4회까지만 역할을 하고 남은 회는 김 씨에게 넘기기로 했다.

1회말 삼성 공격 때부터 사고를 쳤다. 1사 1·3루 찬스에서 4번 타자 최형우 선수가 친 공이 잘 보이지 않아 일단 홈플레이트로 달려가 홈인하는 조동찬 선수에게 가 하이파이브를 청했는데 '너 뭐냐'라며 찡그린 표정이었다. 김 씨가 급히 달려와 기자를 데리고 그라운드 밖으로 데리고 갔다. 알고 보니 최형우 선수가 친 공이 더블 플레이가 돼 버린 것이었다.

큰 실수를 한 것 같아 속상해 있는데 김 씨가 "괜찮다. 경기 흐름에 큰 방해가 된 것은 아니다"라고 격려해줬다. 기아가 1대 0으로 앞서는 상황까지 계속돼 시무룩해 있는데 다시 그라운드로 나설 기회가 찾아왔다. 4회초가 끝나고 신나는 댄스 타임이 찾아온 것. 암수 블레오가 동시 출격해 걸그룹 '시크릿'의 최신곡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는 시간. 다시 문제가 생겼다. 암사자는 원래 추던 춤을 선보이는데 숫사자 역할을 한 기자는 준비가 안 된 탓에 노래방에서 추던 막춤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기자실에서 지켜보던 본지 야구담당 최두성 기자가 이내 달려와 "관중들 사이에 '블레오가 제정신이 아니다' '약 먹었다'며 난리가 났다"며 "자칫하면 초보 블레오라는 게 들통날 수 있으니 이쯤에서 그만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옆에서 내내 기자를 지켜보던 김 씨는 "몸은 좀 편했지만 신경이 더 쓰이고 심적으로 상당히 불안했다"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는 이내 블레오로 변신해 그라운드로 달려나갔다. 3시간 넘게 땀에 젖은 기자의 체험은 여기까지였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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