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의 다비드 레쿠타 루디샤는 8월 23일 베를린의 올림피아 스타디움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월드 챌린지대회 남자 800m에서 1분41초09의 세계기록으로 1위로 골인했다. 루디샤는 역시 케냐 출신이면서 덴마크로 귀화한 윌슨 킵케터가 보유한 종전 세계기록(1분41초11)을 13년 만에 100분의 2초 앞당기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다시 1주일 만에 이탈리아 리에티에서 자신의 세계기록을 0.08초 단축한 1분41초01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여자 800m에서는 성 정체성 논란을 딛고 꿋꿋하게 달리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카스터 세메냐가 기록 단축을 주도하고 있다. 중거리 종목인 800m와 1,500m는 심폐지구력과 스피드가 함께 요구되는 특유의 종목이다. 체내에 이미 저장된 ATP-PC 시스템을 에너지로 사용하는 단거리와 산소를 마시면서 에너지를 만들어 사용하는 유산소시스템에 의존하는 마라톤과는 다르게 800m를 비롯한 중거리는 산소공급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고강도로 에너지를 만드는 젖산시스템에 주로 의존하기 때문에 근육 내에 많은 양의 젖산이 축적되어 일시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종목이다.
여자 800m는 1928년 제9회 암스테르담올림픽 때 처음 채택됐다. 그러나 이 대회 결승에서 선수 9명이 달리는 도중에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여파로 여자 800m는 32년 뒤인 제17회 로마올림픽 때까지 중단되는 위기를 맞았다. 역대 육상경기 최대 라이벌로 꼽히는 영국의 세바스찬 코와 독일의 스티브 오베트는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의 1,500m와 800m에서 각각 우승을 나눠 가지는 등 25개월 동안 무려 40여 개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면서 중거리 종목을 육상경기 최대 이벤트로 이끌었다. 세바스찬 코는 1984년 LA올림픽 1,500m에서도 우승하여 2연패를 이룬바 있으며, 2012년 런던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트랙종목인 중장거리는 주력뿐만 아니라 전략과 몸싸움도 능해야 유리하다. 특히 중거리는 '육상의 격투기'로 불릴 정도로 격렬하게 레이스를 펼치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각종 대회마다 1마일(1,609m) 경주 종목을 따로 마련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800m 한국기록(1분44초14) 보유자인 이진일 현 국가대표 감독은 선수시절 중거리 레이스에서 스파이크로 아킬레스건 부위를 찍히거나 팔꿈치로 가격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했다. 800m는 오픈코스로 접어드는 120m 지점부터, 오픈코스로 시작되는 1,500m는 출발선부터 유리한 자리를 선점하려는 선수들의 과격한 몸싸움이 벌어진다. 이런 모습은 같은 나라 선수 두 명이 한 조에 포함되는 경우가 잦은 예선 경기에서 자주 목격된다. 두 명 중 한 명은 상대국 경쟁자를 견제하기 위해 '해결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800m는 오픈코스로 접어들기 전에 가끔 다른 선수의 코스를 침범하는 파울을 범하는 경우도 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3관왕에 오른 임춘애는 800m에서 원래 2위로 골인하였으나 인도 '중거리의 혜성' 우샤가 레인을 침범하여 실격 처리되어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이러한 코스규칙은 올림픽 트랙이 대회 때마다 일정하지 않아 400m 트랙으로 정해진 1912년 제5회 스톡홀름올림픽 때부터 제대로 적용되었다. 제1회 대회인 아테네의 주경기장은 고대 올림픽 경기장을 모델로 삼은 330m의 트랙으로, 폭이 좁고 직선 코스가 길며 급커브의 코너를 이루어 속도를 유지한 채 코너를 돌기가 어려웠다. 제2회 파리, 제3회 세인트루이스올림픽의 트랙은 500m, 1908년 제4회 런던올림픽대회 트랙은 536.45m이었다. 1924년 제8회 파리올림픽 때도 500m 트랙에서 경기가 진행됐다.
우리나라 육상이 중거리종목에서 유독 강세를 보이는 것은 특유의 '악바리 정신'에 근거한다. 아시안게임 남자 800m에서 우리나라는 김복주(1986년), 김봉유(1990년), 이진일(1994·1998년) 등이 4연패를 달성한 바 있다.
김기진 계명대 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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