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이 만만찮아 아버지께 '검진 선물' 차일피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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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당첨자=문삼숙(대구 달서구 용산동)
다음 주 글감은 '동서(同壻)'입니다
♥ '재검' 통보에 아내 얼굴은 오만상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와 닿는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웃으면 건강해진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팔십이 다 되어가는 장모님께서는 당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힘도 세고 씩씩하게 뛰어다니신다. 그러나 내 아내는 장모님을 닮지 않았는지 이제 마흔이 조금 넘었는데도 골골거린다. 마침 올해 건강검진을 받으라는 통보가 왔기에 이참에 정밀검사를 받아보라고 권했더니 차일피일 미루다가 친구 따라 병원 다녀왔다고 했다. 가뜩이나 잘 웃지도 않는 사람이 그날은 인상을 오만상 구겨서 들어왔다. 내용인즉, 유방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뭐가 보이더라나? 아주 조그마하니 3개월 후에 다시 검사해보자고 했다는데 그때까지 인상 쓰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니 숨이 막혀 온다.
아내의 성격은 철두철미하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고 현관의 신발, 찬장의 그릇 등 모든 게 가지런히 놓여야 하고, 신문을 보고 난 뒤 흩어 놓으면 귀가 따갑도록 잔소리를 한다. 그런 아내의 성격을 아무도 못 맞춰주는 가족들도 문제지만 포기할 만도 한데 자꾸만 스트레스 받으니 가슴에 멍울이 생긴 모양이다.
아내는 다큐멘터리만 본다. 개그 프로그램은 억지로 웃기려고 꾸면 낸 이야기라며 절대로 보지 않는 사람이다. 일요일 저녁 아내를 억지로 TV 앞에다 앉혔다. "당신도 한번 웃어봐라. 우스워서 웃고, 같잖아서 웃고, 시시해서 웃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면 된다." "돌았나? 아무 생각 없이 웃게…." 아들이 한마디 거들었다. "엄마, 건강하게 살라카믄 좀 돌아도 된다. 아빠, 우리 돌았쩨? 맞쩨?" 같잖은지 아내도 싱긋이 웃긴 웃었는데 왠지 어색하기만 하다. "여보, 웃으면 건강해지고 건강하면 행복하잖아, 웃으며 살자.'
김병욱(대구 북구 태전동)
♥ "나라에서 챙겨주니 그나마 다행"
마흔을 넘기다 보니 이제 나라에서 주기적으로 건강을 챙겨 주는 나이가 됐다. 마흔이 넘으면 2년 마다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 간단하게 두어 시간 귀차니즘의 압박만 극복하면 되는 일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위내시경 검사 때문에 건강검진이라는 말만 들어도 진저리를 치게 되는 게 사실이다.
내가 처음 위 내시경을 받은 건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 시절 급성 장염에 걸렸을 때였다. 쉰이 넘어야 받는 대장 내시경까지 위·아래로 찔러 대는 통에 '내시경'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모골이 송연하게 만든다. 거의 30년 가까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내시경의 굵기는 거의 그대로다. 올해는 12월 말까지 하면 되는 건강검진을 굳이 3월 내에 끝내려 한 것도 매도 먼저 맞자는 심리 때문이었다. 그래서 머리에 충격 주는 일은 절대 안 한다는 소신을 약간 굽히고 수면 내시경을 선택하게 됐다. 회복실에 누워 있는 동안 비몽사몽의 정신 상태로 건강검진의 옛 추억을 떠올랐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회사에서 건강검진을 앞두고 언젠가 부모님께도 건강검진 선물을 해드려야지 생각은 했지만 그 비용이 만만찮을 때였다. 그렇게 계절이 몇 번 바뀐 어느 날, 집에서 전화가 왔는데 왠지 불길했다.
6·25 참전 당시 포탄을 온몸으로 맞고도 잔병치레 한 번 하지 않으신 철인 28호 같은 아버지가 며칠 전 배가 아프셔서 검사를 받았는데 간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단다. 갑자기 그 만만찮은 비용 때문에 건강검진을 포기했던 기억에 화장실로 가 한참을 울었다.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고 3개월쯤 지나자 아버지는 몰라보게 달라지셨다. 그 무엇에게도 당당하시던 분이 당신 입으로 "이 놈은 못 이길 것 같다"시며 패배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몇십 년 만에 가장 많은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여름 날, 나의 철인 28호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에게 조금만 일찍 건강검진을 선물했더라면 어땠을까. 후회와 죄책감으로 이별의 슬픔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더 아팠다.
오늘 건강검진을 받는 병원에 어린(?) 사람은 나 혼자였다. 대부분 돌아가신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분들이었다. 역시 다들 혼자 오셔서 건강검진을 받고 계셨다. 나라에서라도 챙겨주는 시대가 된 게 그나마 다행인 건지 모르겠다.
전병태(대구 달서구 두류2동)
♥ 오진이길 바라며 기다렸는데…
동짓달 초이틀은 어머니의 여든네 번째 생신이셨다. 반찬을 준비하여 혼자 고향집을 찾았다. "올해는 내 생일 하지 말고 내년에 하자"고 하셨지만 찾아뵈니 어머니는 반가이 맞아주셨다. 어머니와 둘이서 밤이 늦도록 정담을 나누었다. 어머니께서 "아비야, 가슴이 멍하여 소화가 잘 안 된다"고 하셨다. 이튿날 생신상을 차려 드리고 대구로 오면서 당부를 드렸다. 보건소나 병의원에 가 보시고 낫지 않으면 대구에 오시라고.
열흘 후 어머니께서 대구에 오셨다. 가까운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으셨다. 검사 결과 위궤양이 암으로 인한 것인지도 모르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청천병력과도 같은 말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마음으로 오진이길 빌었다. 하지만 일주일 뒤 위암 중증으로 판정이 났고 그날부터 여덟 달째인 8월 4일 어머니는 주무시듯이 이승의 사념을 버리고 떠나셨다. 여든다섯의 나이셨다.
생전에 워낙 건강하셨기에 건강검진을 자주 해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오늘 무척이나 어머니가 그립다.
박효준(대구 달서구 송현2동)
♥"위내시경은 맨정신으로"
지금까지 건강검진은 세 번 했다. 건강검진을 앞두고 또 고민에 빠졌다. 위내시경 검사를 할 때 수면마취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처음 건강검진을 할 때의 일이다. 수면마취를 하지 않고 위내시경을 하기엔 힘들다는 주변의 이야기에 수면마취를 신청했다. 주변에 수면마취를 하는 환자들이 몇 명 있었다. 이미 검진을 마치고 나온 한 아주머니는 환각상태(?)에서 혼자 뭔가를 계속 말하고 있었다. 왠지 수면마취에 대한 두려움이 불쑥 생겼다.
약을 먹고 누웠다. 그런데 웬일인가. 오전 11시쯤 수면마취약을 먹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오후 5시쯤이다. 다른 사람들은 마취에서 깬 후 운전하고 돌아온다는데 나는 무려 6시간 동안이나 마취약에서 깨어나지 못했던 거다.
그동안의 기억은 아주 흐릿하다. 마치 아주 먼 꿈결에서인 듯 식사를 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게 그 '잃어버린 6시간' 동안의 유일한 기억이다.
그 후론 수면마취를 하지 않는다. 그냥 해도 할 만했다. 건강검진을 하러 가서 회사 선배를 만났다. 그 선배는 수면마취 후 회복 단계였다. 나를 보더니 반갑게 "여기서 만나니 더 반갑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선배는 또다시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아마 똑같은 질문을 다섯 번쯤 받았던 것 같다.
인생은 짧다. 더 이상 잃어버린 시간을 만들지 않기 위해 나는 올해도 맨정신으로 구역질을 참아가며 위내시경 검사를 할 것 같다.
최정은(대구 수성구 지산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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