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 리뷰]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입력 2010-09-02 08:14:13

한 엄마의 끔찍한 복수극, 관객들이 '공범자'가 되는 이유는

올 여름은 한국 잔혹 스릴러가 극장가를 주도했다.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의 한계를 뛰어넘어 폭력에 대한 잔혹묘사, 아동 학대, 처참한 여인 살육 등의 영화 '아저씨'와 '악마를 보았다'가 '인셉션' '솔트' '토이스토리3' 등 화려한 할리우드 영화를 밀어내고 여름 박스오피스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주 천호진, 유해진 주연의 스릴러 '죽이고 싶은'이 개봉한 데 이어 이번 주 여인 잔혹사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개봉했다. 섬에 갇혀 사는 한 여인의 한 맺힌 삶과 처절한 핏빛 복수극이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잔혹 영상으로 그려진다.

세상과 떨어진 아름답고 평화로운 섬 무도에 사는 여섯 가구 아홉 명의 주민 모두가 끔찍하게 살해된 사건을 다룬 잔혹 스릴러다.

화자는 복남의 친구 해원(지성원)이다. 그녀는 은행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딱 부러진 성격의 아가씨다. 집 문제로 대출을 받으러 온 노파를 홀대하고 자신을 골탕 먹였다고 오해해 후배한테 손찌검도 서슴지 않는다. 강간 폭행사건의 목격자가 되지만 이를 외면한다.

해원은 이런 모든 것이 귀찮고 벗어나고픈 생각뿐이다. 해원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는 섬으로 간다. 몇 차례 전화도 있었지만 딱히 소꿉친구 복남(서영희)을 만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삶에 너무 지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평화로울 줄 알았던 이 섬에서 그녀는 더욱 끔찍한 현장을 목격한다. 복남의 검게 그을린 피부 이면에 도사린 잔혹한 섬의 실상을 본 것이다. 하루 종일 노예처럼 일하는 복남의 삶은 목불인견이다. 남편이 뭍에서 여자를 사와 질펀한 섹스를 즐길 때도 그녀는 마루에 앉아 미친 듯이 밥을 먹는다. 남편이 없으면 시동생이 방에 들어와 그녀를 취한다. 그 흔적을 보고 또 남편의 무자비한 폭행이 이어진다.

섬사람들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그녀를 편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녀를 견딜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존재는 딸 연희(이지은). 그러나 연희마저 의붓아버지인 남편에게 성폭행당한 사실을 알고는 뭍으로 탈출을 시도하지만 이마저 실패한다. 그리고 무자비한 폭행을 막으려 했지만 남편의 손에 의해 연희까지 죽고 만다. 그리고 유일하게 믿었던 해원마저 등을 돌린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잔혹한 복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탄탄한 이야기 구조로 관객의 공감을 끌어낸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구성과 전개는 팽팽한 긴장감이 넘친다. 피비린내와 땀내가 섞인 묘한 공포감까지 느낀다.

모든 것이 실패하고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진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낫을 드는 일 뿐이다. 복남이 노인과 여자가 포함된 9명의 희생자를 도륙하고도 연민이 느껴지는 것은 복수의 이유가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순박하게 보이던 시골 섬마을의 야만성은 관객을 질리게 만든다.

낫과 돌, 식칼 등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동원한 응징은 하드고어의 난도질과 맞먹을 정도로 피 냄새가 진동한다. 특히 남편을 죽이는 대목에서는 간장독 터지듯 피가 철철 흐른다.

폭력의 응징치고는 과하다 싶을 정도지만 관객은 그녀의 행동에 동조하게 된다. 그것은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불친절했던, 말하자면 가해자가 된 듯한 관객의 불편함을 복남과 공범이 됨으로써 씻어내는 것이다. 그녀의 무자비함은 오히려 서글프기까지 하다. 피투성이가 된 채 공허한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는 표정은 처연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올해 63회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대된 것을 시작으로 제1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작품상·여우주연상, 제4회 서울디지털영화제 버터플라이상 등을 수상하며 관심을 끌었다.

간혹 신파의 과장과 어긋버긋한 유머와 감정의 과잉 등이 엿보이지만 이마저도 녹일 정도로 강렬하다. '추격자'에서 가슴 아프게 희생되었던 서영희는 순박하지만, 막을 수 없는 복수의 화신으로 복남 역을 잘 소화하고 있다. 연출을 맡은 장철수 감독은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사마리아'의 조감독 출신. 러닝 타임 115분.

김중기 객원기자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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