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암세포 보다 자폐증 아들이 더 걱정"
지난달 30일 대구시 중구 동산동 동산의료원에서 만난 도정숙(가명·43·여·달서구 용산동) 씨는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아들 장수(가명·11)에게 자꾸 눈길을 돌렸다. 정숙 씨는 "아들이 자폐증을 앓고 있어 항상 마음에 걸린다"며 걱정 어린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달 뱃속에 암세포가 발견돼 병원에 있는 정숙 씨는 요즘 아들을 돌보지 못하고 있다. 대학생인 큰 딸 연진(가명·20) 씨가 휴학을 하고 동생을 돌보는 것도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해서다.
◆"내 몸보다 아들 걱정이 먼저"
장수는 얼마 전 두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장수는 초등학교 5학년이지만 이전까지 보조바퀴를 단 자전거를 탔었다. 보조바퀴를 없앤 뒤 장수는 더 신나게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단, 조건이 하나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서만 자전거를 타야 한다는 것이다.
"장수가 병이 있다 보니 또래에 비해 운동신경이 없어요. 길가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차에 부딪치면 어쩌나 걱정이 돼서 자전거는 운동장에서만 타라고 신신당부를 해요."
정숙 씨는 장수를 낳은 뒤 몸이 좋지 않아 수술 받은 적이 있었다. 6년 전 자궁상피내암에 걸린 정숙 씨는 자신의 몸에서 자궁을 들어냈다. 큰딸 연진 씨, 둘째딸 연정이(가명·16), 그리고 장수까지 사랑스런 아이가 셋이나 있어 출산계획은 더 없었지만 그래도 여자로서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암세포가 완전히 떠난 줄 알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올해 7월 허리가 아파 개인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정숙 씨는 뱃속에 악성 종양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때도 정숙 씨는 "엄마 손이 필요한 아이들 걱정을 먼저 했다"고 했다.
하지만 장수가 자폐 진단을 받았을 때엔 이보다 더 힘들었다. 장수의 여섯 번째 생일이 다가오던 어느 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던 아들이 자폐 진단을 받자 정숙 씨의 가슴은 무너졌다.
"그래도 우리 아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괜찮아요. 자폐아동은 미술심리 치료, 특수 교육 등 엄마가 옆에서 챙겨주고 보살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요."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숙 씨 옆에 앉은 장수는 깔깔 웃으며 줄곧 흥얼대고 있었다.
◆"아들에게만 사랑을 쏟아 미안해"
정숙 씨네 아이들은 올해 전문대학 졸업을 앞두고 휴학한 연진 씨, 고등학교 1학년인 연정이와 아들 장수 삼남매다. 장수 이야기를 하면서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정숙 씨는 둘째딸 연정이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두 딸에게 가야 할 관심과 사랑까지 장수한테 다 쏟아 부은 것 같아 아이들한테 미안해요. 우리 연정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장수 곁을 떠날 수가 없어서 학교에 한 번 찾아가지도 못했는데…." 둘째딸 이야기를 하며 정숙 씨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반에서 5등 안에 들었던 연정이는 고등학생이 된 뒤 조금씩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성적에 따라 반이 갈리는 고등학교에서 연정이는 '심화반'에 들지 못했다. 정숙 씨는 "이게 자기 탓인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들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맞춰 배웅을 가기도 하고 학원수업과 개인 과외 등 공부도 시켜주지만 정숙 씨는 빠듯한 형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묵묵히 열심히 공부하는 연정이는 그래도 철이 일찍 든 아이다. 집안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아 학원에 다니고 싶어도 엄마에게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랬던 연정이가 공부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자 며칠 전 엄마에게 "영어와 수학을 좀 배우고 싶다"고 넌지시 말했다. 정숙 씨는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말하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없다. 자식 공부를 제대로 시켜주지 못하는 엄마는 그래서 미안할 뿐이다.
◆ 예고 없이 찾아 온 불행
6년 전까지만 해도 정숙 씨 가족은 평범한 가정이었다. 2004년 파산 선고를 받기 전 남편 서창환(가명·52) 씨는 건축업을 하며 다섯 식구가 큰 걱정 없이 살 만큼 돈도 벌었다. 건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2004년 사업이 무너졌고 정숙 씨와 남편은 그때부터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한 때 '사장님' 소리를 듣던 남편은 지금 건설 공사장에서 일을 해 식구들을 책임진다. 그렇게 버는 돈은 한 달에 100만원 정도. 요즘에는 아내 병간호 때문에 병원에서 지내야 해 공사장에 나갈 수도 없다. 정숙 씨의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비, 막내아들의 치료비까지 감당하는 것은 기초수급생활자인 이들 가족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
지금 정숙 씨 가족은 76㎡ 남짓한 주공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이 집도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 정숙 씨 여동생이 살던 곳이다. 여동생이 이곳에서 사글세로 1년에 480만원을 주고 지내다가 정숙 씨의 딱한 사정을 알고 집을 내줬다.
이 보금자리에는 지금 엄마가 없다. 정숙 씨는 "어서 치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어른도 없는 집에 애들 셋만 지내는 게 불안하다"며 아픈 엄마는 끝까지 아이들 걱정만 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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