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 녹은 물 수십년간 '천연필터' 점토층 지나 에비앙 생수로
에비앙은 도시 이름으로보다 생수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레만호(Reman R.)를 끼고 있는 도시는 에비앙뿐 아니라 인근의 토농(Thonon), 스위스의 제네바, 로잔 이외에도 많은 도시와 마을이 있으나 우리에겐 생소하다. 제네바와 로잔은 그 자체로 큰 도시이고 국제기구가 많아 국제회의도 자주 개최돼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인구 1만 명에도 못 미치는 작은 마을 에비앙에 생수가 없었다면 그냥 프랑스의 한적한 시골 마을의 하나에 불과했을 터다.
질 좋은 천연미네랄워터가 풍부한 대구가 동네우물되살리기로 시민들이 대구 물을 즐기고, 대구 물의 명성이 타 지역으로 알려져 관광 상품이 되고, 고미네랄 생수를 상품으로 만들어 마케팅에 성공한다면 대구 또한 에비앙처럼 전 세계에 알려질 수 있겠다는 상념이 인다.
◆만년설이 만든 습지=에비앙과 레만호 일대는 2만~3만 년 전 빙하로 뒤덮여 있었다. 두 차례의 빙하기를 거치며 빙퇴석과 점토층 등 지금의 지질이 형성됐다. 빙퇴석은 빙하가 녹은 물과 빗물이 지하로 잘 스며들게 하고, 점토층은 자연의 필터 역할을 한다. 지하로 스며든 물은 22년의 긴 시간을 거쳐 레만호에 가까운 에비앙 취수정에 이르고, 에비앙사는 그 물을 정수하지 않고 그대로 병에 담아 세계에 내다 판다. 자연 그대로인 내추럴미네랄워터를 만드는 방식이 참으로 단순하다.
에비앙의 지하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해발 고도가 450여m인 레만호보다 500m 정도 높은 오슈 지역을 찾았다. 맑은 날에는 멀리 몽블랑이 보이고, 해발 2,200m인 당도슈가 눈앞에 서 있는 듯 가깝게 느껴지는 평원이다. 알프스 고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그 높은 봉우리에서 만년설이 사시사철 녹아내린다. 그 물이 39㎢(1천200만여 평) 평원에 200여 개의 크고 작은 습지를 만들었다. 그 가운데 70여 개는 규모가 커 에비앙이 반드시 보호해야 할 중요한 습지다. 람사협회에서 이곳을 습지보호구역으로 정했다.
눈비가 내리면 대부분 지표로 흘러가고 10% 정도가 지하로 내려간다. 지하로 물을 내리는 역할의 30%를 습지가 맡는다. 그만큼 습지가 중요하다.
오슈는 60%가 목초지, 숲 20%, 습지 10%, 주거지 10%로 이뤄져 있다. 9개 마을로 이뤄진 주거지에 6천여 명이 산다.
◆아름다운 평원=오슈 평원은 레만호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농사조차 짓지 않는 목초지, 작은 집, 만년설을 머리에 인 알프스, 레만호가 한눈에 보인다. 가장 전망이 좋은 목초지를 그들은 '오슈의 이빨'이라고 이름 붙였다. 오슈의 이빨에는 십자가만 덩그렇게 버려진 교회가 있다. 물의 보호를 위해 교회마저 비웠다. 십자가의 끝에도 만년설이 걸려 멋진 그림을 만들어 낸다. 그래도 빈 교회는 을씨년스럽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70여 개 중요 습지 가운데 하나인 까보(Gavot) 습지가 있다. 수정처럼 맑은 물이 풀숲 사이로 흐른다. 나무가 곳곳에 쓰러져있고, 이름 모를 들풀이 여기저기 예쁘게 피어 있다. 새도 지저귄다. 그들은 이 습지의 중요성을 홍보하기 위해 탐방로를 만들었다. 프랑스의 어린이와 젊은이들은 물론 세계 각국의 환경전문가, 관광객이 이 탐방로에서 자연의 오묘함과 중요성을 체감한다고 한다.
◆철저한 수자원 보호=오슈 평원과 까보 습지에서는 콘크리트 건축물을 함부로 짓지 못한다. 까보 습지는 100㏊(30만평) 넓이다. 한때 사람들은 오슈 평원은 물론 까보 습지 인근에도 콘크리트 건축물을 마구 지었다. 그러나 어느 날 수자원보호의 중요성을 자각한 지자체가 돈을 지불하고 건축물을 사들여 원상태로 복원했다.
그들은 지하수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 5m 이상 지하를 파도록 허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차장이 주종인 지하 건축물을 지어도 2층 이상은 허가가 나지 않는다. 자기 땅이면 지하수를 마음대로 개발하고 신고하면 그만인 우리와 많이 다르다.
농업용수도 부족분은 지하수가 아니라 수돗물을 싸게 공급해 해결한다. 수돗물을 농업용수로 쓰는 곳이 다른 지역에도 있을지 의문이다. 캐나다는 빙하의 보호를 위해 빙하 상공을 비행기가 비행하지 못하도록 한다지만 이 정도는 아닐 듯하다.
지하수를 보호하기 위해 지자체와 기업이 공조한다. 에비앙시 등 13개 시와 에비앙 생수를 만드는 다농(Danone)사가 APIEME란 협회를 만들어 주민들과 지하수를 보호하기 위한 협력을 체결했다. 주민들이 자기 땅을 무단 개발하고 농사를 지으며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협회는 마을의 하수 처리 비용을 부담하고, 농약 미사용에 따른 생산성 감소분을 보상하는 협약이다.
1998년에는 수자원을 보호하는 펀드도 만들었다. 프랑스 네팔 아르헨티나 태국 등 NGO가 참여해 수자원 보호를 위한 환경 감시 활동도 벌인다. 수자원 보호를 위한 노력이 그만큼 다각적이고 철저하다.
주민들도 수자원 보호를 위한 규제에 불만이 없다. 에비앙은 물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마을인 만큼 서로 윈윈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다.
◆인내의 결과 '물의 도시'='물의 도시' 에비앙과 판매량 세계 1위인 명품 생수 에비앙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불편함을 참고 견디는 주민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에비앙시와 다농사는 부부 같다. 시 세수 50%를 에비앙 생수를 팔아 돈을 번 다농사가 충당한다. 다농사는 에비앙 주민을 위한 사회 활동도 활발하게 벌인다.
에비앙시 주민들은 대부분 '다농 가족' '에비앙 가족'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가족 가운데 1명은 에비앙사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갈등은 있다. 마크 프란시나 에비앙 시장은 "에비앙시와 에비앙사가 결혼한 셈이지만 부부도 티격태격한다"며 "에비앙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본사가 있는 파리로 달려가 문제를 해결한다"고 했다.
글·사진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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