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펀치 못날리고 끝난 국회 인사청문회

입력 2010-08-28 07:10:17

깜짝스타 없어 '죄송' 합니다

'청문회는 스타를 만들어낸다?'

8·8 개각에 따른 인사청문회가 끝났다. 총리와 장관·청장 후보자 10명이 국회 청문특위와 상임위의 증언대에 섰다. 이들은 위장전입과 부동산투기, 각종 비리연루 의혹이 제기되자 증언을 번복, '인정한다' '사과한다'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국민들은 청문회를 보면서 '메가톤급 펀치'를 날리는 스타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청문회에서 과거 청문회에서 간혹 배출되던 청문회 스타는 없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스타급은 없지만...=우리 국민들이 기억하는 최초의 인사청문회 스타는 아마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일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TV로 생중계되던 5공(共)비리 조사특위 청문회에서 증언대에 선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전두환 이 살인마!'라고 외치면서 국회의원 명패를 집어던졌다. TV를 지켜보던 국민의 눈에 각인되면서 노 전 대통령은 일약 청문회 스타로 각광을 받았고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다. 당시 다소 이 장면은 폭력적이었지만 "속 시원했다"는 반응이 더 컸다.

그때와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둔 의원은 노익장을 과시한 자유선진당 조순형 의원과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7선의 조 의원은 75세의 나이에도 24일 김태호 총리 후보자 청문특위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 모두 참석해 송곳질문을 퍼부었다. 김 총리 후보자의 은행법 위반을 지적해낸 것이 조 의원이었다. 조 의원은 김 후보자가 2006년 경남은행에서 10억 원의 선거자금을 대출받았다고 답변하자 "은행법 38조에 따르면 직접이든 간접이든 정치자금 대출은 하지 못하게 돼 있다"고 지적했고 김 후보자는 "몰랐다"며 고개를 떨궜다.

박 의원은 김 후보자의 박연차게이트 연루 의혹에 화력을 집중, 김 후보자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의원은 김 후보자가 박 회장과 2007년부터 알게 된 사이라고 답변하자 청문회 이틀째인 25일 2006년 박 회장 소유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저녁까지 함께 한 사실 등을 증거자료를 내놓고 추궁하자 김 후보자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 박 의원에게 쪽지를 건네는 모습도 연출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김 후보자의 기억이 나지않는다는 버티기 수법은 통하지 않았다.

이번 청문회를 진두지휘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지난해 인사청문회를 통해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 7월 열린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박 원내대표는 천 후보자의 위장전입 사실과 아들의 호화 결혼식, 채권자 박모 씨와의 관계 의혹 등을 제기, 천 후보자를 낙마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청문회 스타로 발돋움한 그는 정책위의장을 맡은데 이어 원내대표에 당선됐고 현재 비상대책위 대표로서 10월 전당대회 때까지 당을 이끌면서 '박지원 시대'를 열었다.

▲증인도 스타가 될 수 있다?=청문회에 나선 국회의원만 스타가 되란 법은 없다. 증인과 참고인은 물론, 각종 의혹 때문에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낙마자까지 청문회를 빛낸(?) 스타가 되고 있다.

이번 총리 청문특위에 증인으로 나선 김 총리 후보자의 형수 유귀옥 씨도 일부 네티즌들로부터 "당차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후보자에게 9천500만 원을 빌려줘 증인으로 나선 유 씨는 민주당 박영선 의원과 단답형으로 답변을 주고받다가 감정 섞인 설전을 벌였다. 박 의원이 차용증에 도장이 찍혀있지 않은 점을 문제삼자 유 씨는 "차용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은행 거래 내역"이라고 주장하면서 "차용증에 도장이 있든 없든 저한테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저처럼 정치랑 상관없이 사는 사람은 내 스타일대로 사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녀는 "질문을 했으면 답을 들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고 급기야 이경재 청문위원장이 중재에 나서 "증인에게 야단치듯 질문하지 말아달라"고 증인 손을 들어 줄 정도였다.

1999년 옷로비 청문회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한 고 앙드레 김도 청문회 스타로 인정받았다. 앙드레 김으로 알려져 있던 그는 증인 선서에 나서 "앙드레 김입니다"라고 소개했다가 본명을 말하라고 질책하자 '김봉남'이라고 밝혀 청문회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사회적 합의 논란까지 제기된 위장전입 문제는 2002년 장상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낙마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장 전 후보자도 청문회를 통해 유명세를 탄 청문회 스타(?)로 꼽힌다.

우리나라 청문회 역사는 1988년 5공비리조사특위 청문회와 광주민주화운동 청문회부터 시작됐다. 2000년 국회가 인사청문회법을 제정하면서 본격적인 청문화가 제도화됐다가 대상이 모든 국무위원으로 확대된 것은 2005년부터다.

서명수·서상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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