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진나라와 초나라가 맞붙었다. 규모나 힘에서 초가 진을 앞섰다. 진나라 은공은 병사도 많고 강한 초나라를 이길 방법을 측근들에게 물었다. 먼저 나선 이가 속임수를 권했다. '예절에 능한 자는 번거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움에 능한 자는 속임수 쓰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며 은공을 설득했다. 다른 측근은 반대했다. '못의 물을 퍼내면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그러나 당장 내년에는 잡으려도 잡을 물고기가 없어진다. 산의 나무를 태우면 짐승을 잡을 수 있지만 내년에 잡을 짐승은 없어진다'는 게 반대 이유였다.
지금 속임수를 써서 위기를 모면한다 해도 영원한 해결책이 아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었다. 임시방편은 한 번은 성공할지 모르지만 다음에는 통하지 않기에 앞날을 내다보는 계책이 아니라는 뜻을 지닌 고사성어 '갈택이어'(竭澤而漁)의 유래다. 눈가림으로 당장의 위기는 넘어가지만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는 의미로 쓰인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연일 죄송하다, 잘못했다, 불찰이다, 실수다, 송구하다, 반성한다는 말이 쏟아진다. 며칠째 이어진 죄송 반성의 말과 글에 온 나라가 반성하고 회개하는 듯하다. 어쩔 수 없었던 변명도 각양각색이다. 직책의 낮고 높고를 떠나 사람마다 말 못 할 고민이 없을 수 있겠느냐는 측은한 마음이 들 정도다. 그러나 죄송하고 반성하겠다는 말은 결국 떳떳하지 않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고위 공직 후보자들이 자꾸 죄송하다는 말만 하고 넘어가는데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만둬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러면서 '죄송 청문회'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후보들마다 청문회만 모면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적당히 답변하고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하지만 뭐가 죄송한지조차 잘 모르겠다고 비꼬았다. 총리와 달리 장관들은 청문회 의견과 관계없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제도인 만큼 청문회만 모면하면 된다고 여긴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소통과 친서민의 말과는 전혀 반대라는 비판도 마다하지 않았다.
죄송하다는 말은 이제 인사청문회의 단골이 됐다. 숨기고 변명하기보다는 죄송하다며 실토하는 게 낫다는 게 청문회 10년의 역사에서 얻은 성과다. 그러나 고위 공직 후보들이야 오늘 못에 물을 퍼내고 산에 불을 질러 고기와 짐승들을 잡겠지만 내일 국민들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서영관 논설실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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