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소방관경기대회는 개막식부터 폐막식까지 참가 선수들의 편의를 위해 1천855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선수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특히 선수들 간 언어장벽을 무너뜨리는 534명의 통역자원봉사자들의 윤활제 역할이 빛을 발하고 있다.
◆젊은이들만 통역하란 법 있나?
"외국인만 보면 가슴이 설레서 항상 먼저 말을 걸어. 그렇게 얘기하다 보면 외국에 여행 온 기분이야."
24일 오전 10시 30분 대구 달서구 두류타워. 한 남성이 거칠게 숨 쉬는 외국선수에게 연방 부채질을 해주고 있었다. 모자 사이로 보이는 흰 머리가 그의 나이를 짐작하게 했지만 그는 여느 젊은이 못지 않게 선수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했다. 여행이 너무 좋아 외국인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는 정주대(71) 씨는 이날도 경기에 참석한 선수들과 쉽게 어울렸다.
정 씨는 영어 통역자원봉사자이지만 간단한 일본어와 중국어 회화까지 구사할 수 있다. 20년간 세계 40개국을 여행하면서 외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일찍 깨달은 덕분이다.
그는 홀로 10년간 매일 영어 뉴스를 반복해 들으면서 받아 적고 따라 읽었다. 그동안 공부에 사용한 공책만 102권이나 된다. 덕분에 2003년 대구하계U대회와 이번 대회에 이어 내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도 당당히 통역자원봉사자로 나선다.
옆에서 일본어 통역을 하던 신하롬(21·여) 씨는 "도착하는 모든 선수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대구 이미지를 한층 새롭게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저만 통역할 수 있거든요"
같은 날 골프대회가 열린 대구 팔공컨트리클럽에서 남영근(26·경북대 건축학과) 씨는 12명의 말레이시아 선수들을 따라다녔다.
남 씨는 534명의 통역자원봉사자 중 유일하게 말레이시아어와 인도네시아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2007년부터 2년 2개월 동안 인도네시아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그곳의 언어를 익힌 덕분이다. 이번 대회에서 인도네시아 팀이 참가를 하지 않지만 언어가 비슷한 말레이시아 팀이 참가해 홀로 통역을 담당하게 됐다.
그는 "다른 봉사자들은 같은 언어를 담당하는 사람들끼리 돌아가면서 통역을 하는데 혼자 다 맡아서 하려니 쉴 틈이 없다"며 "하지만 언어 실력도 늘릴 수 있고 외국 친구도 사귈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된다"고 웃음을 지었다.
말레이시아의 아크마(26·여) 선수는 "한국에서 우리나라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도 신기했다"며 "마침 나이도 같아서 대구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다"고 남 씨를 칭찬했다.
G20 정상회의에서도 인도네시아어 통역 자원봉사 신청을 한 그는 "요즘 많은 대학생이 취업을 위해 독특한 스펙을 쌓고 있는데 나에겐 인도네시아어 자체가 특이한 스펙"이라며 "건축학도로서 지금 배운 언어를 십분 활용해 건설사의 동남아 해외 수주 담당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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