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혹시 넘사벽이 뭔지 아니?"
친구의 문자 메시지에 나는 잠깐 멍했다. 우리말에 그런 단어도 있었나? 나는 고개를 갸웃대며 국어사전을 펼쳤다. 찾다가 보니 그 말을 해독할 수 있는 열쇠는 사전에 있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전을 덮고 노트북의 검색창에 넘사벽을 쳤다. 암호는 쉽게 풀렸다. 넘사벽은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의 줄임말이었다. 이 말을 풀이하면 어느 두 사람을 비교할 때 한쪽이 잘나서 못난 사람이 잘난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뭐야, 이 말은? 나는 휴대전화기의 단축키를 눌렀다. 그녀는 딸의 문자 메시지를 우연히 봤는데 도무지 해독이 안 돼 내게 도움을 청했단다.
요즘 아이들의 대화를 엿듣다 보면 '헐'이니 '즐'이란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비꼬는 의미의 '즐'과 황당하거나 어이가 없다는 뜻의 '헐'은 어느새 어른인 우리 귀에도 익숙해져 버렸다.
통신의 보편화와 더불어 언어의 변칙성과 일탈성이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 이쯤 되면 글이 주는 맛의 정체성에 대해 논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재료를 사용하는데 아이들과 어른의 조리 방법이 다르다. 모양과 맛은 물론 향에도 차이가 난다. 설명을 곁들이기 전에는 무슨 요리인지 알 수가 없다.
말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암호를 주고받는 것 같다. 바다가재 요리를 상어 요리라고 우겨도 이처럼 황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들끼리의 언어로 소통을 하는 아이들. 생선의 머리와 꼬리, 몸통을 싹둑 잘라내고는 맛있단다. 이게 무슨 맛이냐고 물었다간 구세대로 분류되기 십상이다.
나 역시도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 문장을 불완전하게 종결시킬 때가 있다. 음절 수를 줄이려고 조사를 생략할 때도 있고 소리 나는 대로 적기도 한다. 자음을 탈락시켜 '좋은'을 '조은'으로 표기할 때도 있다. 경우에 따라 그게 맛이 난다. 공유의 기쁨도 있다.
표현적 장치를 통해 소통의 효과를 노리는 걸 비난할 수만은 없다. 이것 역시 통신문화에 의한 사회현상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이들이 통신 언어를 너무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있다는 거다.
반쪽 혹은 기형적 언어로 정체성을 잃어가는 우리말, 친구와 나는 아이들과 소통할 때는 반드시 언어의 조리법에 신경을 쓰자고 약속을 했다. 감각적인 아이들의 입맛에만 맞출 게 아니라 우리말의 영양 성분이 파괴되지 않도록 온전한 단어를 구사하자고, 그렇게 조리한 것이 가장 맛있는 말이란 걸, 아이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 주는 게 어른의 몫이라 믿기에.
임수진(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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